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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시 수집 70)

알쓸수집가 2023. 6.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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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이승하

 

작은 발을 쥐고 발톱을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세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을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1. 이승하 시인에 대해

이승하 시인은 1941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 그는 경제과를 전공했지만, 경제과 전공 후 10년이 지난 1973년에는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만큼 시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것 같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풀과 별>>에 시 <파도>가 추천되어 본격적인 시 활동을 했죠.

 

그중에서도 오늘은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 시,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이 시는 시집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에 수록된 시입니다. 시집에는 조금씩 사라지는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 시로 대표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2. 늙은 어머니의 발

이 시는 5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1연에서는 어머니의 발톱을 깎는 배경으로 시가 시작됩니다. 화자는 나이 든 어머니의 발톱을 깎습니다. 나이가 들어 쪼글쪼글해진 어머니의 발을 보며, 어머니가 막 태어났을 때를 상상합니다. 올해로 일흔다섯이 된 어머니, 그녀에게도 처음 태어났던 날은 있었고, 이를 된바람이라는 '자연'은 기억하고 있으리라고 말하죠.

 

2연에서는 발을 보며 화자의 시선이 더욱더 깊어집니다. 나이가 들어 쪼글쪼글해진 것이 마치 가뭄못자리 같은 발. 이 발은 어머니가 걸음마, 고무줄놀이를 할 수 있도록 어머니를 지탱해 준 가장 큰 존재입니다. 이렇게 지탱을 하며 발바닥은 굳은 살이 덮이고 딱딱해져 마치 거북이 등 같으며, 발 군데군데는 주름이 생겨 쪼글쪼글해졌죠.

 

3. 이 발로 나를 업었을 어머니는 이제 발톱 깎을 힘도 없다

어디 발로 고무줄놀이만 했을까요. 아마 어린 화자를 업고 다니기도 했겠지요. 그만큼 어머니의 발은 화자에게 있어서도 어머니의 희생을 드러내는, 그러한 매개체였을 것입니다. 문득 화자는 지금의 어머니를 바라봅니다. 어머니는 이제 나이가 들어, 발톱을 깎을 힘도 없습니다. 자식의 손에 맡겨져, 가만히 말을 따라야 하는 어머니. 어느덧 나이가 들어 나보다도 힘이 없어진 부모님을 보면 '애달픔과 왠지 모를 서글픔'이 솟아납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이 없는 어머니라도, 나는 가장 소중한 자식이죠. 그리고 어른이 된 나도 어머니는 하나뿐인, 내가 기댈 수 있는 존재입니다. 4~5연에서는 이러한 어머니와 자식의 서로를 향한 애정이 드러납니다. 어머니는 내 머리카락을 만지고 뒤이어 내 머리를 감쌉니다. 화자 역시 어머니의 품에 안깁니다. 그리고 뒤이어, 어머니의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를 듣습니다.

 

마지막 행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어머니가 살아왔던 삶을 그려본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한없이 어리고 여린 자식, 어머니의 품에 안겨 어머니가 살아왔던 삶을 생각해 보는 것은, 그만큼 화자도 어머니가 겪어왔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죠. 이렇게 자식과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시인은 '어머니의 삶과 그런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애정, 그리움'을 표현했습니다.

 

 

♣ 개인적인 의견

어릴 때에는 어머니의 힘이 쎄서, 무엇 하나 저항을 하다가도 어머니의 힘에 못이겨 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죠. 제가 힘을 줘서 잡아당기면, 어머니는 힘 없이 따라옵니다. 물론 일부러 힘을 주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자식이 하자는 대로 결국은 해오던 어머니니까요.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가끔은 '어머니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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