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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방문객> (시 수집 72)

알쓸수집가 2023. 6. 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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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1. 정현종 시인에 대해

정현종 시인은 1939년 서울에서 출생했습니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에 기자와 문예창작과 교수를 거쳐,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정현종 시인의 시는 갈등보다는 교감을 품고 있습니다. 생명현상과의 내적 교감, 자연의 경이로움, 사물의 존재 그 자체에 주목하여 '교감과 공감, 이해'를 지향한 시를 썼죠.

 

그는 1965년, <<현대문학에>> <여름과 겨울의 노래>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습니다. <<60년대 사화집>>, <<사계>> 등을 내며 60년대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죠. 그의 초기 시는 고통/축제, 물/불, 무거움/가벼움 등 상반되는 정서 혹은 물건의 속성을 말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이 둘의 을 노래하고자 했습니다. 이후 80년대에 들어서는, 갈등보다도 화해에 더 초점을 맞춘 경향을 띠죠.

 

오늘의 시 <방문객>은 이러한 정현종 시인의 '화해' 정신을 잘 보여주는 시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시의 행갈이, 내용적으로는 바람을 통한 비유로 사람 사이의 진정한 포옹과 이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죠. <<광휘의 속삭임>>(2008)에 수록된 시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다룬 시죠.

 

 

2. 한 사람의 방문

시의 소재는 어떤 사람의 방문입니다. 일상에서 흔히 있는 일이죠. 정현종 시인은 이 일상적인 일을 아주 특별한 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방문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3행부터 나오는 이유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그의 과거-현재-미래 모두가 포함된, 일생이 오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행갈이함으로써,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인이 한 사람의 방문을 평범한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생이 통째로 오는 대단하고 특별한 인연'으로 보고 있음을 의미하죠. 왜 이렇게까지 특별하다고 말을 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시인이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자체로서 큰 세계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우리만의 세상을 가지고 있죠. 그 세상은 상당히 넓어, 우리는 상대의 세상에 대해서 함부로 다룰 수가 없습니다. 그 세계를 함부로 다루고 평가절하하려고 하는 문제로 인하여 다툼이 생기죠. 시인은 이러한 점을 눈여겨보고, 한 사람의 방문은 그의 커다란 세계가 오는 것이니, 그것 자체로서 굉장히 특별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3.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더듬어 보라

이런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을 시인은 중간에 '부서지기 쉬운 / 부서지기도 했을 / 마음'이라고 합니다. 일생을 살면서 사람은 여러 풍파를 맞습니다. 때로는 그 풍파에 부서지고, 무너지고, 마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도 있죠. 시인은 이렇게, '사람의 부서진 마음을 더듬어 봐야 하는 세심함'이야말로, 사람과 진정한 인연을 유지하고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서진 마음을 더듬고, 다시 재건할 수 있는 그런 관계야말로 가장 소중한 인간관계가 아닐까요.

 

이를 마지막 두 행에서 시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더듬어 볼 수 있는 바람'이 된다면 필경 환대하는 것과 똑같다고 말이죠. 그 사람의 인생 자체를 존중하고, 마음을 더듬어 같이 정리해 주려고 하는 자세가 있으면 상대방에게 최고의 환대로 다가올 것입니다.

 

힘든 일이 있었을 때, 집에 들어가면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가족. 그럴 때 혹자는 기쁜 눈물과 함께 참아왔던 감정을 터트리는 경우도 있죠. 가족이라는 존재가 '서로의 삶 자체를 존중하고, 모진 풍파에 부서진 마음을 같이 치유해주려는' 그런 환대를 해주는 가장 직접적인 존재기이 때문이 아닐까요. 시인이 바라는 인간관계는, 바로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환대해주는 관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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