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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그림자> (시 수집 111)

알쓸수집가 2023. 9. 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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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함민복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만이라도 색깔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허리 흰 그림자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

 

찬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 따뜻했으면 좋겠다

 

마음엔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

 

 


 

 

 

1. 함민복 시인에 대해

함민복 시인은 1962년 충북 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시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시, 수필 등 다양한 문학적 활동을 한 그의 대표시집으로는 <<우울씨의 일일>>(1990), <<자본주의의 약속>>(1993),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6), <<말랑말랑한 힘>>(2005) 등이 있으며 수필로는 <사촌형과 신문>과 같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시집의 제목들을 보면 자본주의, 우울이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그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사회에 대한 비판, 소외된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깃든 시를 써 왔습니다. 그의 시는 비판과 함께 포용이 깃든 시죠. 한편으로는 이러한 포용력에서 '모성애'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 <그림자> 역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함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시죠. 이 시는 <<말랑말랑한 힘>>에 실린 시입니다. 말랑말랑한 힘이라는 문구, 보잘것없어 보이는 힘이지만 따뜻하게 말아쥘 수 있는 힘이라는 느낌이 드는 문구입니다.

 

 

2. 1행이 1연으로 이루어진 시

이 시의 형식상 특징은 1행이 곧 1연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각각의 연은 호흡적 간격을 가지면서, 각 연에서 하고자 하는 말 한마디가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화자의 소망을 나타내는 '좋겠다'라는 말의 반복을 통해서 따스한 화자의 바람이 잘 전달되죠.

 

그림자란 빛과 대조되어 '어둠, 우울, 가려진 면'과 같은 부정적인 속성을 대변하는 소재로 종종 사용됩니다. 이 시에서도 그림자는 이러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자는 어떤 면이 있어야 하기에 나타나는 성질이죠. 이 면을 시에서는 '생명이 가질 수밖에 없는 굴곡'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평평하면 그림자가 생길 수 없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굴곡진 삶 속에서 그림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첫 연에서는 금방 시드는 꽃에 그림자라도 색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꽃은 짧은 생을 살았다가 지는 유한하고 사소한 생명입니다. 이러한 꽃의 삶에 그림자만이라도 생명력이 더 강하도록 색을 띄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그림자 = 어둠, 우울로 대변되는 속성을 부정하고픈 화자의 마음입니다.

 

둘째 연에서는 허리가 휜 어머니의 그림자가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허리가 휜 것은 그만큼 굴곡진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겠죠. 그렇기에 그림자의 굴곡은 더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셋째 연에서는 또다른 소외된 이, 걸인의 그림자가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서 구걸을 하는 걸인의 그림자는 더더욱 차갑겠지요. 

 

 

3. 세상이 평평하면 그림자도 없겠지

그리고 마지막 연은 세 연의 개인적인 모습이 합쳐져서, 우리 모두를 위한 궁극적인 소망이 나타나는 연입니다. 화자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평평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평평한 세상에서는 굴곡진 그림자도 없을 테지요. 우리 모두는 평화로운 마음 그대로 살아가면 될 뿐입니다. 앞의 세 연은 개인적인 모습들이며, 마지막 연은 이것이 확장되어 궁극적인 이상향으로 마치는 구성. 이를 통해 시인은 그림자 없이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소망을 말합니다.

 

4연으로 구성된 짤막한 시이지만, 시인이 원하는 세상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세상임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림자가 따라다닙니다. 그 그림자는 우리가 힘들면 힘들수록 더더욱 커지고, 더더욱 굴곡집니다. 몸을 웅크릴수록 그림자는 커지는 이 아이러니. 시인은 그렇기에 평평한 세상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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