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산속에서> (시 수집 43)
<산속에서>, 나희덕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 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1. 따뜻한 모성애로 우리를 위로하는 나희덕 시인
이전에 <오분간>이라는 나희덕 시인의 시를 알아보며, 나희덕 시인에 대해서도 짧게 알아봤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울음이 많았던 아이로, 깊은 공감능력과 사물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풍부한 감수성을 지녀서 그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그녀의 시는 마치 '어머니의 모성애로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 주는 시' 같습니다. 이러한 경향을 띠는 여러 시가 있지만, 오늘은 그중 하나 <산속에서>라는 시를 살펴보겠습니다.
*나희덕 시인이 조금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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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오분간> (시 수집 37)
, 나희덕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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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두컴컴한 산속에서 희망과 위로를 주는 존재, 불빛
이 작품은 1999년에 출간한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에 수록된 시입니다. 4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시로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 화자의 경험이 배경이 된 시입니다. 밤에 혼자 산속을 걷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무섭습니까? 어둠이 칠흑같이 깔려있고,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주위에서는 당장 무엇인가가 나를 잡아갈 듯한 두려움에 빠질 것입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빠져나갈 수 없다는 두려움은 좌절감으로 바뀌고, 이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죠.
화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저 멀리 불빛이 보이는 것을 발견합니다. 불빛을 본 순간, 아마 안도감과 함께 희망을 품고 불빛을 향해 달렸을 것입니다. 털썩 주저앉은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에너지를 쏟아내 달려갔을 테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화자는 1연에서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길 끝에 보이는 불빛의 따뜻함을 모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불빛은 따뜻하다고 했습니다. 환하다라는 말 대신 따뜻하다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는, 여기서의 불빛이 어둠 속에 빠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즉 이 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이자 위로의 시인 셈이죠.
3. 인간의 위대한 힘과 지붕들의 모성애
2연에서는 어둠 속에서 맞잡을 수 있는 손의 힘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로는 외롭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의 옆에 있는 사람을 누구보다 깊게 위로할 수 있고, 누구보다 그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말함으로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이며 힘들 때는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3연에서는 이러한 위안과 희망이 모성애적인 표현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바로 산속에 존재하는 작은 지붕들입니다. 어두운 산속을 두려움에 지나고 있는데 작은 집들이 보인다면 그것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될까요? 거대한 산속의 아주 작은 집이지만, 그렇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나희덕 시인은 이를 '어깨를 감싸 준다'라는 표현으로 빗대어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기듯, 이러한 모성애적 표현으로 지붕들이 주는 위로와 위안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4. 불빛은 희망이자 꿈
마지막 4연에서는 불빛이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은 일시적입니다. 잠깐 그 자리에 앉아서 쉴 수 있지만, 다시 일어나서 어디로 가야 할지는 여전히 모르죠. 불빛은 이러한 일시적인 휴식 그 이상의 존재입니다. 바로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주는, 즉 지속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희망이자 꿈이 되어주죠. 이런 결말로 인해 불빛은 단순한 목적지를 넘어서서 우리의 희망이자 꿈이라는 거대한 존재로 탈바꿈합니다. 이러한 희망과 꿈이 계속 보인다면 제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반드시 넘어갈 의지가 생깁니다. 시인은 이런 결말을 통해서 '우리에게는 어떤 불빛이 항상 존재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불빛으로 안내할 수도 있다'라는, 인간의 고귀함과 소중함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 개인적인 의견
지금의 저는 마치 어두운 산속을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나아가고는 있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 주변은 어떤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당장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이럴 때 누가 시에서 나오는 '인간의 힘'을 가진 누군가가 제 앞에 나와서 저를 불빛으로 향하게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외로운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