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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소나기> (시 수집 81)

알쓸수집가 2023. 6. 2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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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곽재구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은

알지

누군가를 고즈넉이 그리워하며

미루나무 아래 앉아 다리쉼을 하다가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알지

자신을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격정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를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분노라는 것을

그 소나기에

가슴을 적신 사람이라면 알지

자신을 속이고 사랑하는 이를 속이는 것이

또한 얼마나 쓸쓸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1. 짝사랑의 아픔, 시로 옮긴 곽재구 시인

황순원의 <소나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읽어 봤을 명작이죠. <소나기>를 읽으면, 풋풋한 청춘날에 느꼈던 사랑의 따뜻함과 설렘, 그리고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랑과 그로 인한 아픔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누구나 사랑에 설레고, 사랑에 아픕니다. 하물며 그것이 짝사랑이라면,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이를 표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내 가슴은 사랑앓이로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죠.

 

곽재구 시인의 <소나기>는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에 수록된 시입니다. 짝사랑의 애달픔을 소나기와 엮어서 노래한, 가슴이 아려오는 시죠. 그 옛날 우리 모두 느꼈을 감정을 다시 살피며 시를 감상해 볼까요?

 

 

2.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은 알지

시의 시작은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은 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앞 행의 '소나기가 내리는 것'은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상시킵니다. 나 역시도 뜨거워지는, 조약돌 하나로 이어진 사랑의 이야기, 하지만 결국에는 맺어지지 못하는 아픔. 시인은 소설 <소나기>를 연상시키기 위해 시의 도입을 이렇게 썼던 걸까요.

 

꼭 <소나기>와 연상짓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소나기'는 짝사랑을 하는 나의 애달픈 마음을 표현해 줍니다. 소나기는 화창한 하늘에 갑작스럽게 내리는 폭우입니다. 몇 분 전까지 화창했다가 비가 어마어마하게 내려 주위는 캄캄해지고,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지죠. 이러한 소나기를 통해서 '상대를 생각하며 행복함에 젖어있다가도 짝사랑의 아픔으로 인해서 답답해지는 변덕스러운 마음'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는 그만큼 가슴을 아리는 짝사랑의 속성을 잘 보여주기도 하죠.

 

 

3. 자신과 사랑하는 이를 속이는 아픔

짝사랑은 마음껏 표출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관심 역시도 제대로 표출할 수 없죠. 때로는 사랑하는 내 마음을 애써 부정하기도 하고, 전혀 반대로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주위에 떵떵 말하기도 하면서 본심을 감추죠.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속은 '타들어가고 상대에 대한 생각으로 끙끙 앓고 있을 것'입니다. 시인은 이를 '참기 힘든 격정과 분노'라고 말했습니다.

 

 

4. 그렇기에 짝사랑은 쓸쓸한 것, 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것

짝사랑의 결말은 행복한 장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고 결국 상대방과 멀어져만 갑니다. 그렇기에 짝사랑은 때로는 어떤 감정보다도 쓸쓸함과 슬픔을 줍니다. 

 

하지만, 그런 짝사랑이 있기에 사랑도 있는 법이지요. 사랑으로 인해 가슴을 앓는 것, 시인은 이를 '쓸쓸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하여, 역설적으로 짝사랑이 지닌 순수한 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쓸쓸한데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단언코 가장 어울리는 것 중 하나는 '짝사랑'일 것입니다.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이기에 씁쓸하고 혼자인 사랑이기에 쓸쓸하죠. 하지만 그만큼 순수한 감정입니다. 이런 쓸쓸한 아름다움을 우리 모두 겪어봤을 것입니다.

 

소나기가 내리는 여름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며 감상에 젖고 싶다면, 이 시를 읽으며 그 옛날 내가 직접 느꼈던 짝사랑에 대해서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쓸쓸했지만 그만큼 설레고 행복했던 그때의 추억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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