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먼지의 꿈> (시 수집 13)
<먼지의 꿈>, 정호승
먼지는 흙이 되는 것이 꿈이다
봄의 흙이 되어 보리밭이 되거나
구근이 잠든 화분의 흙이 되어
한송이 수선화를 피워 올리는 것이 꿈이다
먼지는 비록 끝없이 지하철을 떠돈다 할지라도
내려앉아
더 낮은 데까지 내려앉아
지하철을 탄 사람들의 밥이 되는 것이 꿈이다
공복의 출근길에 승객들 틈에 끼여
먼지가 밥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오늘의 시는 정호승 시인의 <먼지의 꿈>입니다.
1. 정호승 시인의 낮은 존재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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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정호승 시인은 '보잘 것 없는 존재의 외로움', 그리고 '그런 존재에 대한 사랑과 위로'를 시에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으면, 나의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그 현실에 부딪혀 살아가는 나는 나 자체로 고귀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큰 희망을 품도록 해 주지는 않지만, 지금 자체로도 나는 충분히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위로의 시인'입니다. 오늘 소개한 <먼지의 꿈>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위로를 주는 시입니다.
2. 비교적 최근에 발표된 시
이 시는 <<당신을 찾아서>>(2020)에 실린 시입니다. 소재는 '먼지'입니다. 정호승 시인은 보잘것 없는 존재, 외로운 소시민 등 특별하지 않은 대상에 항상 주목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먼지는 시인의 눈에는 가장 반짝거리는 소재였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중에 먼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먼지는 보잘 것 없고, 작고, 칙칙한 존재니까요.
총 10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먼지'라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지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모든 곳에 존재하지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고 알아주는 이 하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먼지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흙이 되어 생명을 품고 보살피는 것', '지하철을 탄 사람들의 밥이 되어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6행과 7행입니다. 우리는 보통 '꿈' 하면 '상승'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시에서 먼지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내려앉고 내려앉습니다. 일반적인 이미지와 반대되는 시어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서, 먼지의 꿈은 낮은 곳에 있는 존재를 위하고자 함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가장 짧은 행인 6행의 문구, '내려앉아'는 딱 이 문구만 행으로 처리함으로써, '낮은 존재들을 위로하기 위해 직접 다가가가는 자세'를 직접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시인의 사상이 가장 잘 담긴 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인간 세상 가장 아래로 내려와 인간들을 대신하여 고통을 짊어진 예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시는 '먼지'라는 작은 존재의 꿈을 통해서 '낮은 곳에 있는 우리들을 우리와 상황이 비슷한 누군가가 보듬어주는 사회, 힘든 삶을 사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 주는 따뜻함'을 그리고 있습니다. 먼지의 꿈은 다른 이들의 꿈과 다르게 내려가야 하는 꿈이지만, 그 꿈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높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의견
아무도 관심이 없는 '먼지'라는 대상에서 이러한 시상을 찾은 시인의 눈에 감탄이 나옵니다. 우리 모두는 보잘 것 없지만, 가슴 속에 어떤 꿈 하나는 꼭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꿈이 누군가의 눈에는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우리에게는 가장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여기서의 '먼지'는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작고 영향력 하나 없어 보이는 '현대 소시민'과 동일시됩니다. 작고 외로운 존재이지만 분명히 어떠한 꿈을 안고 살아갑니다. 또한 형편이 어려운 다른 사람들의 삶에 그만큼 더 관심을 가집니다. 가끔 따뜻한 뉴스 소식을 보면, 대개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형편이 어려운 다른 사람에게 온정을 베푸는 그런 소식들입니다. 힘듦은 힘듦을 겪고 있는 사람이 알고 있죠. 먼지 역시 그러한 어려움을 몸소 겪고 있기에, 아침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지하철 시민들의 밥이 되고 싶다는,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 거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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