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낙화> (시 수집 18)
<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1. 청록파 시인, 조지훈
조지훈 시인은 1920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한민국 문학사에서는 박목월, 박두진 시인과 함께 <<청록집>>을 발간하여,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죠. <<청록집>>은 1946년에 발간되었는데 이 <낙화> 역시 실려 있습니다. 조지훈 시인의 시는 특히 '불교적 색채와 고전적인 미'를 잘 담고 있습니다. 시 <승무>나 <고풍의상> 등에서는 한국의 고전적인 미를 잘 드러내고 있죠. 그의 시를 읽으면 마치 '별만이 빛나고 있는 캄캄한 밤, 어느 산속의 절에서 별빛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스님'이 떠오릅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거친 그는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이기도 맡았던 등, 민족성을 살리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시에서도 이러한 점이 반영되어 우리 민족의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한국적인 미를 살리기 위해 고민해 왔죠. 한편 생애 후반에 가서는 역사적 소용들이 속에서의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는 앞에서 말했듯이 그의 초기 시에 속합니다. 고전적인 미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죠.
2. 강원도에서 지은 시 <낙화>
이 시는 9연 18행의 시입니다. 시를 읽으면 '어딘가에서 은둔하는 이의 고독한 마음'을 노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 시는 조지훈 시인이 일제강점기 말에 감시망을 피해 강원도에 피신했을 때 지은 시입니다. 여기서의 화자는 시인 자기자신이죠. 이 배경을 알면, 이 시의 분위기를 한층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에서 시간적 배경은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입니다. 별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점점 더 깊은 어둠에 빠집니다. 공간적 배경은 꽃이 떨어지고 있는 어느 산속입니다. 시는 화자의 시선이 이동하면서 전개되고 있는데, 조지훈 시인은 모든 연을 2행으로 구성하면서 각 행에서 간략하고 절제된 어조를 사용함으로서, 고전적인 미를 시에 담았습니다. 1~3연에서는 꽃이 지는 상황과 시간적 배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후 4연에서는 꽃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 풍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은 7~8연입니다. '묻혀서 사는 이'는 강원도에서 도피하고 있는 시인의 현 상황을 말합니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힘들고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떨어지는 낙화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서글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꽃이 져 갈수록, 자신의 의지와 희망이 떨어지는 듯한 고독을 느꼈을 것입니다. 마지막 9연에서는 '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라는 표현으로, 꽃이 지는 것에 대한 서글픈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시는 '낙화'를 소재로 하여, 자연의 섭리와 그 속에서 느끼는 삶의 고독함과 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낙화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지금 시인의 고독한 상황과 맞물려 시인은 낙화를 자연현상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떨어지는 듯한 감정으로 인하여,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시는 특유의 '고전적인 절제미와 불교적 색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산속으로 보이는 배경, 은둔하고 있는 상황 등이 불교적 색채를 드러내는 것들이죠.
♠개인적인 감상
벚꽃이 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지고 있습니다. 꽃이 지는 현상은 그 자체로 자연의 순리이며 아름다운 현상이지만, 떨어지는 꽃을 보면 왜인지 모를 쓸쓸함과 고독함이 듭니다. 아름다운 자연 현상이지만 떨어지는 현상이기에 그러지 말라고 붙잡고 싶은,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이죠. 떨어지는 꽃을 보며 고독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고독함을 떨어진다는 동작이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조지훈 시인은 고독함이라는 감정을 특유의 절제미로 아주 고풍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울고 싶다는 직접적인 감정을 표출했지만, 펑펑 우는 것이 아니라 입을 다물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상상됩니다. 절제미와 정확한 감정 표현, 자연현상에 대한 관찰,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진 <낙화>에서 우리는 한 폭의 동양화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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