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모아모아 시

이형기, <낙화> (시 수집 2)

by 알쓸수집가 2023. 3. 2.
728x90
반응형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보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오늘의 시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1963년, 이형기 시인의 첫 시집 <<적막강산>>에 수록된 시입니다. 1957년에 창작된 이 시는 떨어지는 꽃잎(낙화)를 통해서 이별, 죽음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한국적 정서가 드러나는 이형기 시인의 가장 대표적인 시입니다. 벚꽃이 폈다가 지는 4월이 되면 어김 없이 이 시가 생각납니다.

 

시는 6연 19행으로 이루어졌으며, 3음보에 바탕을 둔 안정적인 율격을 가진 서정시입니다. 떨어지는 낙화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말한 1연은 이 시의 핵심이자,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구절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지는 꽃을 의인화해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며 성숙해지는 한 생명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떨어져 죽어가는 꽃잎이지만 그 결별이야말로 축복에 쌓여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여, 자연적 섭리로서의 이별과 그 이별로 얻는 성숙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3연에서 나의 청춘이 꽃답게 죽는다는 표현을 통해서 이별의 슬픔과 고독함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 청춘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머지않아 다시 열매를 맺어 새로운 무엇인가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낙화는 고독함 그 자체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성숙, 새로운 출발 등 복합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죠. 

 

이 <낙화>는 떨어지는 꽃잎에 대한 이미지를 아주 섬세한 언어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또한 낙화라는 자연적 현상을 관념적인 주체로 바꿈으로서, 복합적인 이미지를 시 안에서 느낄 수 있죠.

 

더보기

소재 : 낙화

주제 :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존재의 아름다움

특징 : 3음보의 율격, 관조적 성격의 서정시

 

개인적인 감상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문구는 참으로 역설적이죠. 이 문구는 떠나는 순간이 슬픔의 순간만이 아닌, 축북할 수 있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함을 깨우치게 해주는 아름다운 문구입니다. 우리는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합니다. 정상에 올라 화려하게 꽃을 피웠을 때 떠나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축복의 순간임을 일상생활에서도 깨닫고 있었던 것이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이기도 한 이 <낙화>는 떨어지는 꽃잎에서 쓸쓸함과 고독, 슬픔을 느끼면서도 미래에 다시 열매로 태어날 꽃자리에서 또다른 희망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시입니다. 꽃이 져야 더더욱 성숙하고 단단하고 튼튼한 열매가 맺어지듯이, 사람도 이별의 슬픔 속에서 더 성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의 죽음,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 등은 우리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고통의 순간입니다. 나뭇가지에서 꽃잎이 툭 떨어질 때의 고통이죠. 하지만 이는 자연의 섭리기도 합니다. 아름답게 지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언젠가 맞이할 이별을 더욱 성숙하게 맞이하도록 준비하고 그와 동시에 지금의 만남이 유지되고 있는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길 바랍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시

https://c-knowledge.tistory.com/53

 

이형기, <폭포> (시 수집 21)

, 이형기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c-knowledge.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