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난은>,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잎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오늘의 시는 천상병 시인의 <나의 가난은>입니다.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시일 것입니다. 가난과 무직, 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천상병 시인의 시는 <귀천> 등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맑고 깨끗한 느낌이 많이 듭니다.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으로도 불렸던 그는, 삶 전반에 영향을 미쳤던 가난으로 인해서 이러한 순수한 마음을 담은 시를 더더욱 노래하고 싶어하진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시인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되면 다시 순수한 존재로 돌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많은 시들에서 담고 있는데 이와 동시에 필연적으로 가난, 고독도 많이 등장합니다. <나의 가난은>이 그중 하나입니다.
시의 핵심 소재는 '가난'입니다. 돈이 인생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기에, 그 돈이 없음으로 인한 고독함은 특히 나이 든 화자에게 더 무겁게 매달려 있습니다. 시에서 화자는 한 잔의 커피와 담배를 사고 해장 음식을 먹고도 버스를 탈 수 있는 현금이 남아 있음에 행복을 느낍니다. 진정한 소확행이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음날에는 어떻게 버텨야 할지를 걱정합니다. '가난'이 자신에게는 필연임을 인정하면서도 예금통장 하나 만들기 어려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상병 시인의 삶에 대한 자세가 마지막에 다시 드러납니다.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은 결국 돈이 없는 서러움으로 살아왔지만 그 서러움들도 내 삶의 일부로 초연히 받아들였음을 의미하죠. 시인은 이 메시지를 통해 가난하지만, 그럼에도 소박하게 살아가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괴로움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그로 인해 비애와 씁쓸함을 느끼지만 그것 역시도 내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 마지막 전 행입니다. 그리고 왜 마지막에서는 바람이 불라는 말을 했을까요. 바람은 모든 것을 가지고 떠나버리는 존재죠. 자신의 가난과 괴로움까지도 바람이 가져가 자신은 순수한 존재로 남고 싶길 원하는 그런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인 감상
사람은 죽음에 임박하면 모든 것에 초연해지고 아팠던 기억,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해서도 해탈하는 자세를 보입니다. 시에서의 화자는 고작 돈 몇 천 원에 고민하는 현대인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고통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현자의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이가 든 화자라서 더 그런 걸까요. 시를 읽다 보면 화자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면 어떤 말을 마지막으로 남길지가 그려지는군요. 아마 '힘들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와 같은 말이 아닐까요?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저는 무조건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낀다는 자세가 참으로 좋지만, 작은 것에만 행복을 느껴서는 너무 슬플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 시를 읽다 보면 소확행의 씁쓸함에 대해서 생각이 드는군요. 몇 걸음 더 걸어서 맛있는 빵을 좀 더 싼 가격에 사서 기뻐하다가, 고민 없이 비싼 빵을 사먹고 싶다는 씁씁함에 빠졌던 며칠 전의 저를 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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