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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김기림, <금붕어> (시 수집 3)

by 알쓸수집가 202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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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 김기림

 

금붕어는 어항 밖 대기를 오를래야 오를 수 없는 하늘이라 생각한다.

금붕어는 어느새 금빛 비눌을 입었다 빨간 꽃 이파리 같은

꼬랑지를 폈다. 눈이 가락지처럼 삐여저 나왔다.

인젠 금붕어의 엄마도 화장한 따님을 몰라볼게다.

 

금붕어는 아침마다 말숙한 찬물을 뒤집어쓴다 떡가르를

힌손을 천사의 날개라 생각한다. 금붕어의 행복은

어항 속에 있으리라는 전설과 같은 소문도 있다.

 

금붕어는 유리벽에 부대처 머리를 부시는 일이 없다.

얌전한 수염은 어느새 국경임을 느끼고는 아담하게

꼬리를 젓고 돌아선다. 지느러미는 칼날의 흉내를 내서도

항아리를 끊는 일이 없다.

 

아침에 책상우에 옴겨 놓으면 창분으로 비스듬이 햇볕을 녹이는

붉은 바다를 흘겨본다. 꿈이라 가르켜진

그 바다는 넓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금붕어는 아롱진 거리를 지나 어항 밖 대기를 건너서 지나해의

한류를 끊고 헤엄쳐 가고 싶다. 쓴 매개를 와락와락

삼키고 싶다. 옥도빛 해초의 산림속을 검푸른 비눌을 입고

상어에게 쪼겨댕겨 보고도 싶다.

 

금붕어는 그러나 입으로 하늘보다도 더 큰 꿈을 오므려

죽여버려야 한다. 배설물의 침전처럼 어항 밑에는

금붕어의 연령만 쌓여간다.

금붕어는 오를래야 오를 수 없는 하늘보다도 더 먼 바다를

자꾸만 돌아가야만 할 고향이라 생각한다.

 


오늘의 시는 김기림 시인의 <금붕어>입니다. <나비와 광장>이라는 시로도 잘 알려진 김기림 시인은 모더니즘 시인의 대표 주자입니다.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지식으로서의 자각을 보여주려함을 시에 담아 표현했으며 이 시는 그러한 김기림 시인의 방향성을 잘 나타내는 시입니다.

 

시는 크게 6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항 속에 같혀서 살다 그대로 생을 마감하는 금붕어를 소재로 하여,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안락함으로 포장된 구속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비판했습니다. 어항 속 금붕어는 외부의 위험이 없이 어항 안에서 안락함을 누리며 살지만, 그러면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잃어가고 어항의 끝이 내 세상의 경계선임을 스스로 그으며 지냅니다. 비록 지나해의 한류를 끊고 헤엄쳐 가고 싶다는, 상어에게 쫓겨도 보며 옥도빛 해초의 산림속을 헤엄쳐 보고 싶다는 소망을 꿈꾸지만, 지느러미를 칼날처럼 사용해서라도 저항해 보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맙니다.

 

이 시는 산문적 느낌이 강한 시로, 어항과 바다와 같은 대조적인 느낌의 표현을 사용하여 자유와 구속이라는 두 가지의 상반된 개념을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어항 속 삶에 안주(1~3연)-바다를 동경(4~5연)-꿈을 좇지 못하고 현실에서 좌절(6연)

 

의 구성으로, 현대인이 현재를 살아가며 현실 안주와 좌절감을 동시에 느끼는 모습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좌절감은 마지막 연에서 아주 강한 언어로 표현됩니다. 죽어버려야 한다라는 아주 직설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틀에 갇힌 작은 공간에서 일평생을 살다가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비애에 대해서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 죽음이 다가오면 몸에서 마지막 배설물이 힘없이 뿜어져 나옵니다. 배설물의 침전이라는 표현 역시, 이러한 죽음의 순간을 더 강하게 그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사용한 표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인 감상

어릴 때는 금붕어를 굉장히 많이 길렀습니다. 거의 5년 동안 기른 금붕어도 있었는데 녀석의 마지막은 한쪽을 움직이지 못한 채로 수면 위에서 입을 뻐끔거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 금붕어를 보며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쌓여있었던 학창 시절의 저는 지금 그 금붕어와 똑같이 작은 방과 회사의 내 자리만을 왔다갔다하며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갈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기림 시인은 금붕어를 통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따지면 고귀하고 우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구속되어 자신의 자유를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는 우리를 비판함과 동시에, 우리가 꾸었던 꿈을 자각하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자는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바다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 바다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의 틀을 어떻게 뛰어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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