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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피천득, <편지> (시 수집 7)

by 알쓸수집가 2023.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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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피천득

 

오늘도 강물에

띄웠어요

 

쓰기는 했지만

부칠 곳 없어

 

흐르는 물 위에

던졌어요


1. 피천득 작가에 대해

오늘의 시는 피천득 작가의 시, <편지>입니다. 작가라고 부른 이유는 피천득 작가님은 시보다도 수필로 유명하신 분이기 때문이죠. 피천득 작가는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이후 하버드대학교 연수, 서울대학교 대학원 학생과장 등을 역임하시다가 2007년 5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피천득 작가는 수필로 유명하신 분입니다. 대표적으로는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 <기다리는 편지>, <은전 한 닢>, <인연>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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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YES24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수필가이자오월을 사랑하고 오월을 닮은 시인 피천득새로운 디자인, 증보된 내용으로 만나는 수필집 『인연』 시집 『창밖은 오월인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수필

www.yes24.com

 

하지만 그는 1947년 첫 시집 <서정시집>을 출간한 이후에 많은 시 창작 활동을 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피천득 시인의 시는 사상이나 관념을 되도록 배제한 순수한 정서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특히 동심/자연에 대한 시들이 많습니다. 오늘 소개할 <편지> 역시 '물'이라는 자연이 중심 소재입니다.

 

2. <편지>에 대해

이 시는 2연 6행의 아주 짧은 시로, 첫 시집 <서정시집>에 실린 시입니다. 편지란 대체 어떤 대상에게 보내는 용도로 작성합니다. 사람이 되었든 사물이 되었든 전달하고자 하는 이가 분명하죠. 하지만 <편지>에서의 편지는 '부칠 곳 없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이유 없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흐르는 강물에 띄웠습니다. 왜 굳이 편지를 써서 강물에 띄웠을까요?

 

<편지>에서 은 피천득 작가가 추구하는 순수함의 세계를 표망하는 듯합니다. 물은 안정적이고, 특정한 방향이 없으며, 끊기지 않고 계속 흘러갑니다. 어디로 가든 물이 가진 그 순수함과 영원함은 변하지 않습니다. 시에서 편지는 부칠 곳이 없다고 했지만, 아마 작가는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즉 우리의 발로는 갈 수 없지만 물과 같이 영원한 존재를 통해서 갈 수 있는 어떠한 이상적인 공간에 편지를 부치기 위해 물에 띄웠을지도 모릅니다.

 

이 대상은 이상적인 세상일수도 있고, 하늘에 계신 부모님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나를 향해서일 수도 있고, 온 세상을 향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물은 끝없이 흘러가 이 대상들에 전부 다다를 수 있으니까요. 목적지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시에 편안함과 안정감이 더 깃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편지를 띄우고 편지가 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듯한 그런 고요함이 6행의 짧은 시 안에 듬뿍 담겨 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

피천득 작가에 대해서는 최근에 저희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수필가로 유명하지만 어머니는 피천득 작가의 시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는 혼자 있는 월요일, 해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 시간대에 읽기 좋은 시라고 하셨습니다. 시가 주는 고요함안정감이, 그리고 목적지 없는 편지가 주는 작은 쓸씀함이 마치 해가 천천히 져 갈 때의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띄우고 멍하니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이러한 시가 떠오르는 것일까요. 물결에 출렁이면서 천천히 사라져가는 편지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한강 둔치에서 해가 질 때, 이 시를 읽으며 나룻배 하나 접어 띄우면, 내뱉지 못하고 가슴 속에 묻어야만 했던 나의 마음이 왈칵 쏟아질 것 같습니다. 그 쏟아진 것들을 나룻배에 실어서 어디론가 멀리 보내며, 나는 다시 원래의 순수한 존재가 되어감을 느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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