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봄길> (시 수집 10)
<봄길>,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떨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지난번에 정호승 시인에 대해서 간략한 소개를 하고 <수선화에게>를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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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수선화에게> (시 수집 8)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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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호승 시인의 외로운 인간 존재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다른 시, <봄길>을 감상해 보겠습니다.
1. 봄 하면 떠오르는 시, <봄길>
정호승 시인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의 시는 '외로운 존재로서의 인간'과 '그들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봄길>에서도 그러한 점이 매우 잘 드러납니다.
시에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외롭습니다. 축복을 받으며 길을 걷는 것이 아닙니다. 주위가 '강물이 멈추고, 새들이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꽃잎이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이는 축복과는 거리가 멀어보이죠. 오히려 적막함이 맴도는, 외로운 시골길 같은 느낌이 더 듭니다. 또한 때로는 길이 없어지는 상황을 마주합니다. 사랑이 없어진다는 점 역시 길을 걷는 사람의 주위에는 사랑과 같은 감정은 남아있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이를테면 걷는 이에 대한 혐오, 경계, 비난, 무시 등)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죠. 이는 여기서의 길을 걷고 있는 주인공은 혼자 외롭게 본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런 사람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동시에 나타냅니다. 길이 없으면 멈추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가 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길을 개척하여 나아간다는 거겠죠. 또한 아무리 주위 상황이 절망적이어도 멈추지 않는 모습, 사랑이 없이 부정적인 감정들이 주위를 맴돌면 자기자신에게 한없는 자기애를 주어 길을 나아가는 모습은 이러한 외로운 주인공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의 길을 가시밭길이 아닌 봄길이라고 표현한 점 역시, '사랑'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이 시는 정호승 시인의 사상과 특유의 운율감이 잘 드러난 시입니다. 외롭게 자기만의 길을 가면서 이 길이 맞는지 고민하고, 때로는 좌절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려는 우리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이며, 그 길은 어떤 길이든지 아름다운 봄길이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합니다.
♠개인적인 의견
우리는 외로움과 주위의 부정적인 상황을 마주하면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망가트리곤 합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죠. 그런 우리에게 정호승 시인은 '그러지 마라. 우리의 신념을 믿고 그대로 나아가라. 그 길이 곧 꽃길이 될 것이다. 그런 우리는 위태롭지만 그렇기에 더욱 사랑스러운 존재이다'라는 위로를 줍니다.
스스로 사랑이 된다라, 이 정도로 튼튼한 방어막이 어디에 있을까요. 스스로가 사랑이 되어 주위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어떠한 시련이 와도 그 장애물을 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힘든 상황이 찾아오면,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수고했어. 난 널 믿어'와 같은 따뜻한 말을 건네는 건 어떨까요. 나 자신에 대한 감정이 달라질 것이며,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수고했어. 난 널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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