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려면>,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1. 따뜻한 손길로 우리를 어루만지는 시인, 정호승
오늘 살펴볼 시는 정호승 시인의 시 <꽃을 보려면>입니다. 정호승 시인은 '외로운 존재'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시로 표현해 온 시인입니다. <수선화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 등 '경제적/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드러냈죠. <꽃을 보려면>은 이러한 정호승 시인의 시 발자취를 바탕으로 이해하면 꽃에 담긴 의미를 다르게 파악할 수 있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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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수선화에게> (시 수집 8)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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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꽃을 보려면>의 꽃은 무엇일까
시인이 말하는 꽃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일단 말 그대로 꽃 한 송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꽃은 '꽃 그 자체'는 아닙니다. 자연물로서의 꽃을 보는 데는 칼을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눈만 있으면 볼 수 있죠. 여기서의 꽃은 꽃 그 이상입니다.
정호승 시인은 외로운 존재, 즉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현대 소시민들에게 위로를 주는 시를 많이 썼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하면, 여기서의 꽃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확히는 꽃씨라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사람 그 자체로의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죠. 정호승 시인은 모두 아름다운 꽃처럼 사람 역시 그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존재임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꽃이 꽃씨 속에 숨어있다는 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본질이 여러 면에 의해서 가려져 있음을 의미하죠.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내면을 먼저 보기보다는 외형, 드러나는 성격, 삶의 모습 등을 봅니다. 때로는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해서 판단하죠. 모든 판단이 좋은 판단이라면 모르겠지만 그 사람을 깔보는 판단들이 많은 것도 현실입니다. 사람은 사람 자체라는 가장 본질적인 의미에서 모두가 아름답고 좋은 존재일 수 있는데 잘못된 판단들에 의해 더 안 좋은 상황들이 만들어지죠. 정호승 시인은 이를 깨우쳐주기 위하여 '인간 그 자체로서의 인간'을 '꽃씨 속의 꽃'으로 표현한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3. 꽃을 보기 위해 취해야 할 자세
이 시는 4연 16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연은 같은 구성으로, 반복되는 시어를 통해서 운율감을 줍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꽃을 보려면, 즉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일단 '고요히 눈이 녹기'와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라고 합니다. 이 둘은 냉정하고 현실적, 기회주의적인 차가운 시선을 거두고 따뜻한 마음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 그 자체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둘러싼 많은 외적 조건들을 물리쳐야 하죠.
그 다음에는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라고' 말합니다. 어머니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존재죠. 인간은 본질적으로 생명이 가득한 존재, 어머니에게 태어난 축복받은 존재이기에 이 점을 깨닫는 것이 어머니를 만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리라'고 합니다. 이는 사람을 대할 때 서글프고 날카로움으로 대하지 말고, 따뜻함을 가지고 대하라는 의미겠지요. 아마 정호승 시인은 칼 대신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지고 꽃을 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꽃에게 주는 따뜻한 물, 그것이야말로 생명 그 자체를 생명으로서 존중하고 보듬어주려는 자세 아닐까요. 시인은 이러한 태도를 통해서 인간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마주하고 그 아름다움을 따뜻한 손길로 대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합니다.
♣ 개인적인 감상
이 시는 우리를 위로하는 시이면서도 우리에게 성찰의 자세를 안겨주는 시인 듯합니다. 다른 대상을 볼 때 우리는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서 판단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지나쳐서 오해를 하거나,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못하고 우열을 나누고 나보다 낮다고 판단하고 깔보는 등,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을 종종 하죠. 정호승 시인은 이런 모습들을 보고 그런 모습을 가지지 말고, 사람 그 자체의 따뜻한 내면을 보고 따뜻하게 대하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따뜻한 정호승 시인의 따뜻한 시, 제 마음의 눈을 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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