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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이해인, <파꽃> (시 수집 26)

by 알쓸수집가 202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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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꽃>, 이해인

 

뿌리에서 피워올린

소망의 씨앗들을

엷은 베일로 가리고 피었네

 

한 자루의 초처럼 똑바로 서서

질긴 어둠을

고독으로 밝히는 꽃

 

향기조차 감추고

수수하게 살고 싶어

 

줄기마다 얼비치는

초록의 봉헌기도

 

매운 눈물을

안으로만 싸매 두고

스스로 깨어 나는

조용한 꽃

 


 

여느 시골길을 걷다 보면 풍성한 밥상을 위해 심어놓은 여러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광경을 봅니다. 그중 가장 많이 보이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입니다. 5월이 지나 6월 즈음 되면 파는 꽃을 피우는데요, 그 파꽃에서 한 수녀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오늘의 시, 이해인 시인의 <파꽃>입니다.

 

 

1. 시로 우리를 어루만지는 수녀님, 이해인 시인

이해인 시인이자 수녀님은 1945년 강원도 양구 출생입니다. '시 쓰는 수녀'로 잘 알려진 그녀의 시는 '예쁘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 '사랑스러운 우리들의 모습' 등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습니다. 그녀의 시를 읽으면 힐링이 되는 듯합니다.

 

https://c-knowledge.tistory.com/40

 

이해인, <봄 햇살 속으로> (시 수집 11)

, 이해인 긴 겨울이 끝나고 안으로 지쳐 있던 나 봄 햇살 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간다 내 마음에도 싹을 틔우고 다시 웃음을 찾으려고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눈을 감고 들어가고 또 들어간 끝

c-knowledge.tistory.com

 

그녀는 수녀로 평생을 보내셨던 만큼 종교적 이미지가 시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이 <파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 수녀님 그 자체, 파꽃

이 시는 2004년 시집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에 수록된 시입니다. 5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초록빛 파꽃을 감상하며 쓴 시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이 파꽃이 수녀님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연에서는 소망의 씨앗들을 '엷은 베일'로 가리고 피어난 파꽃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 베일은 수도녀가 머리에 얹는 종교 소품입니다. 흰 보풀처럼 일어난 파꽃이 마치 하얀 베일을 쓴 모습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연에서는 파꽃의 고운 자태에 대해 말합니다. 한 자루의 초처럼 똑바로 선 것은 파의 자태이기도 하지만, 주위 상황에서도 위라는 자신의 길을 가려는 어떤 종교적 갈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주위가 질기고, 이를 고독으로 밝힌다는 것이 마치 십자가를 매고 위를 향해 걷는 예수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베일과 함께 4연에서는 봉헌기도라는 시어가 등장합니다. 봉헌기도란 로마 가톨릭에서 하나님께 헌금을 봉헌하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선물에 대한 감사의 말과 선물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언급 등을 의미하죠. 줄기마다 초록빛 봉헌기도가 얼비친다는 것은 이 파꽃이 하나님을 향해 위로 올라가면서, 몸은 점점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참을 말합니다. 평온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한 초록이라는 색이 봉헌기도라는 소재와 어우러져 종교를 통해 평온함을 얻은 종교인의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5연에서는 스스로 깨어 나는 꽃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아름다운 종교적 승화 혹은 종교적 경지에 이른 모습이 드러납니다. 눈물을 안으로만 싸매 뒀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자신이 대신 짊어지고 그 고통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종교인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이 <파꽃>은 이러한 종교적 이미지를 통해서, 아름다운 자연물에 신성함을 부여했습니다. 이해인 시인은 파꽃의 자태에서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고귀한 길을 연상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감상

<파꽃>은 종교적 이미지를 사용했지만 이 시에서 종교적 이미지는 거부감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상적인 자연물에 신성함과 경이로움을 줍니다. 우리는 자연에 대한 다큐를 보면 이렇게 신비로운 자연이 내 주위에서 나를 감싸고 있구나 하는 사실에 새삼 놀랄 때가 많습니다. 자연의 모습처럼 일상적이면서도 경이로운 모습이 어디에 있을까요. 마치 신의 손길이 닿는 것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운 순간이 많이 일어나니까요. 이해인 시인 역시 주위에서 자신을 감싸던 자연의 모습에서 어떠한 궁극적인 이미지를 보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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