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나태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1. 따뜻한 사랑을 노래하는 나태주 시인
나태주 시인은 1945년에 충남 서천에서 출생했습니다. 오랫동안 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한 그는,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면서 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명시란, '시인의 영혼이 스며들어 있는 시'이며 참된 시인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언어와 합치하여 이들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인의 영혼, 나태주 시인에게 그 영혼은 따뜻함, 아름다움, 삶의 정경,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전통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인간에 대한 사랑, 삶의 정경 등을 노래한 따뜻한 시인입니다.
그는 대표작인 <풀꽃>에서 나타나듯, 섬세한 관찰력으로 대상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습니다. 그 감정은 다른 이들의 공감을 사로잡기 충분했고, 시의 언어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섬세합니다. 그의 시가 아주 짧은 분량으로도 마음을 울리는 이유입니다. 오늘은 그중 <내가 너를>이라는 사랑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 이 시는 어떤 상황에서 부르는 노래일까
시는 3연 11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입니다. 사랑의 감정을 진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합니다. 이 시에서는 사랑의 감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몰라도 된다고 말합니다. 보통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 감정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사랑을 직접 표현하려고 하죠? 하지만 이 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몰라도 된다는 건 여러 상황으로 유추가 가능하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그 사람에게 내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일 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별을 맞이하였기에 더이상 그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경우일 수도, 짝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애뜻한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시인은 그러한 슬프기도 한 상황의 감정 역시 사랑이라는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랑하기에 싸우고, 사랑하기에 속앓이하죠. 2연에서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마 화자가 놓인 상황이 '더이상 상대방을 만날 수 없는 이별의 상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사람을 직접 만날 수 없으니 그리움은 커져만 가죠.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더욱 커져 3연에서는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게 됩니다. 대상이 눈에 없어도 그 대상은 내 마음 속에서 사랑으로 남아있으리라는 표현이죠. 이를 통해 지나간 사랑이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든 그 사람과의 추억은 내 마음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순간 중 하나로 영원히 남아있게 됩니다.
♠ 개인적인 감상
너 없이도 너를 / 좋아할 수 있다
참으로 로맨틱한 표현입니다. 너는 지금 당장 눈앞에 없어도, 당분간 만날 수 없어도, 혹여 나를 떠나도 영원히 내 마음 속에서 사랑으로 남아있으리라는 말. 이렇게 순수한 말이 어디에 있을까요. 짝사랑했지만 고백하지 못하고 영원히 내 마음에 짝사랑으로 남은 그 사람, 좋아했지만 잘해주지 못해 이별하게 된 그 사람,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지만 집에 와서도 두 눈에 아른거렸던 사람, 우리에게는 모두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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