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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김수영, <폭포> (시 수집 22)

by 알쓸수집가 2023.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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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깊은 산속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위압을 심어주는 폭포. 참으로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멋진 자연입니다. 이러한 폭포를 보며 어떠한 정신을 얻은 시인이 있습니다. 바로 김수영 시인입니다. 김수영 시인은 폭포를 단순히 어떤 자연물로만 보지 않고, 자연물 이상의 관념적인 존재로 바라봤습니다. 폭포가 담고 있는 성질을 통해서 그가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려 했는지, 오늘 김수영 시인의 시 <폭포>를 감상해 보죠.

 

 

1. 참여시, 김수영

김수영 시인은 비교적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가 한국 시문학사에 남긴 발자취는 매우 강렬합니다. 그는 1921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났습니다. 1945년에 <<예술부락>>에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며 등단한 그는 대표적인 모너니스트 시인으로 불립니다. 그는 1949년엔 김경림, 박인환 시인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샐오누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기도 하며 모더니스트로 각광받았고, 이후에도 모더니즘적인 감각의 시를 창작했습니다.

 

그의 삶은 참으로 여러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1950년 6.25 때는 미처 피난하지 못해 북한군에 징집되었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하였으며 이후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격렬한 움직임을 온몸으로 느꼈죠. 교통사고라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등, 그의 삶 역시 굴곡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굴곡 속에서 그만의 시를 확립시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참여시'로 유명합니다. '참여시' 하면 '김수영'을 떠올립니다. 그의 참여시는 많은 후대 문학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1960년대, 4.19와 5.16 군사정변을 몸으로 직접 느끼면서 이때부터 참여시의 성격을 띈 시를 창작하기 시작합니다. 참여시는 '민중에게 목소리를 내기를 촉구하는 시, 저항하는 민중들과 자신 역시 억압된 현실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진 시'입니다. 민중의 한 목소리로 부패를 무너트린 4.19, 뒤이어 다시 억압이 찾아온 5.16을 같이 느끼며, 그는 '평등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자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강렬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에 뿌리를 둔 그의 대표적 시로는 <풀>(1968)과 더불어 <푸른 하늘을>(1960), <강가에서>(1964), <거대한 뿌리>(1964),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 등이 있습니다. 또한 <시여, 침을 뱉어라> 등이 평론을 통해서 참여시와 시의 현대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시 <풀>은 이러한 참여시의 백미로 꼽히죠.

 

오늘의 시는 이렇게 어떠한 억압에도 굴복하지 않는 저항정신을 잘 나타낸 대표적인 시, <폭포>입니다.

 

 

2. 관념적인 존재, 폭포

이 시는 1959년에 출간한 첫 시집 <<달나라의 장난>>에 실린 시입니다. 김수영 부인에 의하면, 이 시는 실존하는 폭포(세 들어 산 집의 정원에 있던 폭포)를 보고 쓴 시라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폭포는 단순한 자연물로 보입니다. 하지만 폭포에는 자연물 그 이상의 어떤 관념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를 찾겠다는 굳은 의지'입니다.

 

이 시는 5연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폭포의 이미지가 시각적-청각적 감각을 넘나들며 구체화됩니다. 1~2연에서의 무엇을 향한다는 건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어떠한 세속적 욕망이나 달콤한 목적'을 말하죠. 하지만 폭포는 이와 반대로 규정할 수 없으며, 무엇을 향하지도 않습니다.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은 규정이라는 어떠한 울타리로도 억압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현실에 얾애이지 않고 억압에 좌절하지도 않는 굳센 폭포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는 '고매한 정신'이라는 아주 직접적인 표현으로 구체화됩니다. 폭포는 고매한 정신 그 자체입니다.

 

3~4연에서는 밤이 되어 청각적 감각으로 전환이 됩니다. 이를 통해서 폭포가 복합적으로 그려지며, 다양한 감각을 통해서 시가 더욱 풍성해집니다. 밤이 되어 금잔화, 인가도 보이지 않는 것은 지지해줄 사람들과 희망이 없는 어둠에 빠졌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집니다. 여기서의 '곧은 소리'는 4연에 들어서 반복되며 강조되고 있습니다. '곧은 소리'라고 하면, 4.19 때 민중이 낸 우렁찬 저항의 소리를 의미할 것입니다. 시인은 그러한 소리, 즉 억압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기 위해 내는 목소리야말로 진정한 소리라고 말합니다. 소위 말하는 꿀 발린 말, 아부하는 말, 순응하는 말은 진정한 소리가 아닙니다. 진정한 소리는 증폭되어 또 다른 소리를 부릅니다. 이는 개인 한 명 한 명이 소리를 낸 끝에 4.19라는 거대한 혁명이 일어났음을 비유하기도 하죠.

 

5연에서는 이러한 저항 정신이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았다'는 표현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폭포의 물방울은 번개와 같이 빠르게 떨어져서 취할 순간조차 주지 않습니다. 취한다는 것은 여유롭게 감상에 젖거나 잠시 쉰다는 것이지요. 이는 즉 '폭포의 정신은 그러한 잠시의 휴식조차 가지지 않고 끊임없이 저항하며 내 갈 길을 간다'를 의미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폭포의 정신을 지향하고자 합니다. 

 

이 시는 강렬한 표현을 통하여 폭포의 곧은 자세를 우리도 본받고, 폭포의 곧은 소리처럼 우리 역시 진정한 자유의 소리를 온몸으로 낼 것이라는 의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현실에 대응하는 시인의 태도가 폭포에 투영되어, 폭포는 자연물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

지난번 이형기 시인의 <폭포>를 살펴보았습니다. 폭포를 관념화한 이 두 시를 같이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김수영 시인의 시에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저항과 참여입니다. 이 시에서도 '곧은 소리는 소리를 부른다'라는 구절을 통하여 올바른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퍼져 마침내 누구도 이길 수 없는 큰 물결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 그러니 우리 모두 올바른 소리를 내자는 독려를 대중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자연물 폭포를 자연물 그 이상으로 해석한 김수영 시인의 매서운 눈이 당대 사람들에게는 큰 자극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김수영 시인은 완전한 민주화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산이 완전한 민주화 운동에 많은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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