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황동규
이제 너와 헤어지는 건
강물이 풀림과 같지 않으랴
어두운 한겨울의 눈이 그치고
봄날에 이월달에 물이 솟을 제
너와 나 사이의 언짢음도 즐거움도
이제 새로 반짝이는 봄 강물같이
오늘의 시는 다소 짧은, 완연한 봄날에 어울리는 시입니다. 오늘은 시인보다도 시 자체를 감상해도 좋을 것 같은 날입니다. 황동규 시인의 <봄날에>입니다.
1. 황순원의 아들, 황동규 시인
황동규 시인은 소설가 황순원의 아들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표적인 사례가 이 두 분일 것입니다. 1938년 평안남도 숙천이라는 곳에서 출생한 황동규 시인은, 해방 이후 남쪽으로 넘어와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1958년, <<현대문학>>에서 <시월>과 <즐거운 편지> 등으로 추천을 받아 등단했습니다.
황동규 시인은 초기 서정시에서 출발하였는데, 황동규 시인의 시에서는 자아와 현실 사이의 갈등, 꿈과 현실의 갈등, 그리고 이러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 대한 아름다움 등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황동규 시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살펴보며 자세히 이야기나누겠습니다.
2. 짧지만 황동규 시인의 언어가 잘 담긴 시, <봄날에>
이 시는 1연 6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입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시이지만, 시에서 황동규 시인의 언어가 잘 느껴집니다. 황동규 시인의 말에는 잔잔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감정은 확실하게 울려 우리에게 향하지만, 요동치는 감정이 아닌 잔잔한 감정으로 다가오지요. 이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의 소재는 봄입니다. 1~2행에서는 너와 헤어지는 것이 강물의 풀림과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의 너는 어떤 존재일까요. 강물이 풀린다는 것은 따뜻한 봄이 오고 있음을 말하는데 이러한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은 이 헤어짐은 따뜻한 풀림과 다르게 어떤 차가운 슬픔을 말하는 것일까 싶습니다. 여기서의 너는 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이나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3행에서의 한겨울 눈은 어떠한 시련을 의미합니다. 눈이 그치고 이제 봄날이 찾아온다는 것은 분명히 부정적 상황이 가고 새로운 희망이 올 것임을 암시하죠. 여기서는 '한겨울'과 '봄날'이 대비되어, 봄날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명확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5~6행에 이르러 언짢음과 즐거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새로 반짝이는 봄 강물같이 되었는데, 이는 부정적 긍정적 감정 모두를 아우르고 있는 복합적인 상황입니다. 우리 인간은 항상 긍정과 부정이라는 두 감정이 공존한 상태로 살아갑니다. 시인은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강물로 합쳐진다는 표현으로 두 감정이 아름답게 공존하여 어떠한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듯합니다.
♠ 개인적인 감상
시는 짧지만, 그 안에는 황동규 시인이 생각하는 어떠한 복합적인 내면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봄을 단순히 봄이라는 계절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떠한 새롭고 복합적인 감정의 탄생 공간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짧은 시 안에 '즐거움'과 '언짢음', '한겨울'과 '봄', '헤어짐'과 '풀림' 등 대비되는 단어들이 다양하게 사용되었지만, 그것은 대비 자체로 끝나기보다는 서로 어울려 하나로 합쳐지는 듯한 인상입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봄을 보며, 기존에 가졌던 긍정/부정적인 면들이 다시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탄생하는 모습을 발견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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