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모아모아 시

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시 수집 17)

by 알쓸수집가 2023. 4. 1.
728x90
반응형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오늘의 시, 너무나도 유명한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정호승 시인은 '사랑'을 참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그의 사랑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사랑'하는 존재의 특별함 때문입니다. 그는 '외로운 존재, 소외된 존재, 마음 한켠이 아픈 존재'를 사랑합니다. 정호승 시인은 여러 시를 통해서 경제적/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애정을 시로서 표현했습니다.

 

https://c-knowledge.tistory.com/37

 

정호승, <수선화에게> (시 수집 8)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c-knowledge.tistory.com

 

1.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 시는 1998년에 발표된 시입니다.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 실린 시로, 정호승 시인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시입니다. 시집 이름부터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인데, 이에서 알 수 있듯이 정호승 시인은 현대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대중들의 외로움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외로움을 어루만지고, 그 외로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며, 외로움을 가지고 있어도 존재의 가치는 여전히 빛나고 있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이 시는 정호승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담고 있는 시로, 인간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부정적인 면들에 주목하여, 그 면들이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사랑받을 사람이며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그늘이 있어야 햇빛이 더욱 빛나는 법

이 시는 2연 15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연이 공통적인 구조를 띄고 있으며, 각 연은 어떠한 대비를 통해서 시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연에서 주목할 단어는 '그늘'과 '햇빛'입니다. 우리는 '햇빛'을 좇습니다. 마음 속에 그늘이 드리우는 것은 곧 좌절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러한 '그늘'이 있어야 햇빛이 더 맑고 눈이 부시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그늘을 가지고 있고, 그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즉 '어떤 외로움, 좌절, 슬픔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우리들'을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그늘을 가지고 있고 그늘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그늘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사랑하는 대상을 '그늘'로 설정한 것입니다. 시인 역시, '그늘'을 이해하고 있는 '외롭고 슬픈 사람들'에게 연민과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3. 눈물이 있어야 기쁨이 있는 법

2연 역시, 1연과 동일한 구조로 이번에 대비되는 소재는 '눈물'과 '기쁨'입니다. 2연은 마치 '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찾아온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합니다. '눈물'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역시 '눈물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며, 눈물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라는 단정적인 말을 통해서, '하루가 멀다하고 여러 시련에 눈물을 흘리는 우리'를 진정으로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또한 14행에서는 '그늘'과 '눈물'이 동시에 등장합니다. 여기서의 '그늘'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충전'의 감정이 되었습니다. 잠시 머리를 정리하고 싶을 때 눈을 감고 어둠 속에 빠지듯, 그늘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죠. 그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시인은 그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 하면 보통 '활기차고, 즐거운 상황'들을 떠올리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이해하는 장면이야말로 아름답죠. 이러한 상황이기에 '고요한'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4. 반복과 대조로 '사랑하는 사람'을 강조하다

시에서 사용된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반복 : 같은 구조를 사용하며,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와 같은 말을 반복하여 시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② 대조 : '그늘'과 햇살 / '눈물'과 '기쁨'이라는 두 단어를 대조하여 시인이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들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그늘'과 '눈물'을 마냥 부정적인 감정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며, 이 둘이 있어야 비로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③ 설의적 표현으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며, 여운 있게 시를 끝냅니다.

 

 

♠ 개인적인 감상

빛은 어둠이 있어야 더 밝게 빛납니다. 어둠이 있어야 모든 생명체는 휴식을 취하며 다시 나아갈 에너지를 얻습니다. 만약 세상에 빛만 있다면 그 빛의 의미는 특별하게 강조되지 않을 것입니다. 시인은,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가지기 싫어했던 것들에 주목했습니다. 삶이 힘들수록 '그늘'에 빠지고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생'의 의지를 놓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그늘과 눈물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라고 말하려는 것일 것입니다.

 

'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오듯'이, 이 둘은 양립되는 성질이면서도 서로를 보완해 줍니다. 때로 좌절을 하거나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면, 이 또한 또 다른 희망을 위한 삶의 사이클이며, 언젠가 지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길 바랍니다. 또한 남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무작정 뭐라 하기보다는 그 모습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같이 헤쳐나갈 수 있게 용기를 복돋아주길 바랍니다.

 

정호승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하는 듯합니다.

 

'힘든 세상에서 좌절하는 우리지만, 우리는 우리 자체로 고귀한 존재이다. 또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그러니 이를 부정하지 말고 편하게 받아들이라. 이 또한 또다른 희망과 기쁨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같이 읽으면 좋은 시

https://c-knowledge.tistory.com/39

 

정호승, <봄길> (시 수집 10)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c-knowledge.tistory.com

 

https://c-knowledge.tistory.com/42

 

정호승, <먼지의 꿈> (시 수집 13)

, 정호승 먼지는 흙이 되는 것이 꿈이다 봄의 흙이 되어 보리밭이 되거나 구근이 잠든 화분의 흙이 되어 한송이 수선화를 피워 올리는 것이 꿈이다 먼지는 비록 끝없이 지하철을 떠돈다 할지라

c-knowledge.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