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오세영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 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 주는 달,
'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매화, 진달래꽃, 개나리, 벚꽃 등이 피기 시작하는 요즘, 꽃과 관련된 특별한 시, 오세영 시인의 <2월>을 감상해 보죠. 오세영 시인은 1942년 전남 영광에서 출생했습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1968년 시 <잠깨는 추상>이 박목월 시인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했습니다.
그의 시는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불교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불교를 기반으로 한 '사물의 인식과 존재론적 의미'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여 이를 시에도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이 <2월>이라는 시도 겉으로만 보면 '꽃이 피기 시작하는 2월에 대한 감상'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타 다른 시인들의 가벼운 꽃 관련 시와는 분위기가 조금 다른, 심오한 느낌이 깃든 시입니다.
1. 꽃이 피기 시작하는 2월을 노래한 시 <2월>
이 시에서는 '2월'을 '벌써'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언제 지나가나 싶은 매서운 추위가 지나가고,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면서 푸르른 새싹이 나오기 시작하면 우리는 '벌써 봄이 오는구나' 하는 말을 자주 하죠.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벌써'라는 말을 가장 자주 쓰는 계절은 '봄'입니다. 봄에 '벌써'라는 말을 자주 쓰는 이유는, 황량한 겨울 공간에서 새로운 녹색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즉 계절의 변화를 가장 느끼기 좋은 계절이죠. 그 시작이 '2월'이기에, 시인은 이에 주목했을 것입니다.
시인은 뜰의 매화 가지를 오늘은 지나치지 말고 보라고 합니다. 이 매화 가지에서는 아마 매화 꽃이 맺힐 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벌써'라는 말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것이며 '봄이 오는구나' 하는 것을 확실하게 새겨 주죠.
2. 심오한 존재론적 의미에 대해 다룬 <2월>
그런데 보통 봄을 다룬 시들은, 봄이나 꽃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노래하곤 하지만, 이 시는 어떤 심오한 의미를 매화 가지를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3연의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 드러내 밝힌다'와 4연의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 보여 주는 달'입니다.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아마도 매화 가지를 통해서, 매화라는 존재, 나아가 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말을 하려는 것일 것입니다. '봄이 왔구나' 라는 말을 해야 비로소 '봄'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어떠한 이름을 부르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야 그것은 유형의 존재가 되어 내 눈 앞에 나타난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 준다는 것은, 시인의 존재론에 대한 심오한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현상은 무엇이며, 본질은 무엇인지 우리는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2월'은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결국 끝에는 봄이 오는 달입니다. 이를 통해서 현재 2월의 현상, 즉 아직 추위가 남아 있는 현상이 결국 봄은 오는 '계절의 순환'이라는 본질을 이길 수는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시는 2월과 매화, 봄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계절의 심오함에 대해서 다루는 시인 듯합니다. 시인 특유의 문체를 통해서 어떠한 존재에 대한 심오한 사고를 다룬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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