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味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오늘의 시는 김남조 시인의 <겨울바다>입니다. 1967년에 발행된 김남조의 시집 <<겨울바다>>의 표제작이기도 한, 유명한 시로 EBS 교재에도 많이 나오는 시더군요.
1. 여류시인, 김남조
김남조 시인은 1927년 대구광역시 출생입니다. 모윤숙, 노천명의 뒤를 이어 1960년대 여류시인의 계보를 잇는 분입니다. 그녀는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여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시는 교편을 잡은 것보다도 더 일찍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1951년이 그녀의 졸업 연도인데, 시가 처음 발표된 연도는 1950년으로, <성수>, <잔상>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다작 시인으로도 알려진 그녀는 굉장히 많은 시집과 시선집을 출간했습니다. 1970년대까지 발행한 시집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은데, 굉장히 왕성한 활동을 하셨음을 알 수 있죠. 시집의 개수와 이름만 들어도 이 시기에 왜 여류시인의 중심에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목숨>>(1953), <<나아드의 향유>>(1955), <<나무와 바람>>(1958), <<정념의 기>>(1960), <<풍림의 음악>>(1963), <<겨울바다>>(1967), <<설일>>(1971), <<영혼과 빵>>(1973), <<사랑초서>>(1974), <<동행>>(1976)......
그녀의 시는 '인간성에 대한 확신과 왕성한 생명력'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적 색채를 띄고 있는 그녀의 시는 '인간의 윤리의식', '기독교적 신념과 신앙', '자아 성찰'을 띄며 인고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인간의 존재를 그리고 있습니다.
2. <<겨울바다>>의 표제작 <겨울바다>
이 시는 1967년에 발행된 <<겨울바다>>의 표제작입니다. 시는 굉장히 간결한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섬세하기 그지없습니다. 전체 8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아 성찰', '절망 극복 의지', '종교적 믿음'이 시인의 언어로 잘 표현되었습니다.
여기서의 '겨울바다'는 희망이 사라진 허무의 공간, 좌절의 공간입니다. 화자는 겨울바다에서 황량하고 절망적인 풍경을 보고는 2연, 3연에서 좌절감을 겪습니다. 특히 3연은 '불'과 '물'의 대비가 강렬한 색채를 띕니다. 보통 '물'은 '불'을 끄는 존재이지만 여기서는 '물' 위에 '불'이 붙어, 그러한 관계가 역전되었습니다. 그만큼 화자가 느끼는 좌절감은 푸른 물마저도 황량하게 태우려고 하는 정도이죠. '물'은 생명 사랑, '불'은 소실, 슬픔을 뜻하기에 부정적인 감정이 긍정적인 감정 위를 뒤덮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자는 이러한 상황을 무작정 부정하지 않고 '끄덕이며 끄덕'입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와 같은 믿음을 가지며, 화자는 6연에서 기도를 올립니다. 6연은 기도를 통해 '절망의 종교적 극복'이 드러나는 연입니다. 시인의 '종교적 색채'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죠.
그리고 마지막 '인고의 물이 /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라는 구절은 깊은 고통 속에서도 생명, 사랑의 성질을 띄는 물이 튼튼한 기둥이 되어 받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의 겨울바다는 죽음의 공간인 동시에 화자가 삶의 의지를 일깨우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고통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종교적 고행의 공간이기도 한 겨울바다에서 화자는 절망-깨달음-희망을 복합적으로 알아갑니다. 또한 '남은 날은 적지만'이라는 구절의 반복을 통해서 남은 삶의 시간에는 일희일비하지 않겠음을 다짐하고 있죠.
♠ 개인적인 의견
이 <겨울바다>는 아주 간결한 어휘 속에서 강렬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시입니다. 종교적 문구는 '기도' 하나밖에 없지만 전체적으로 '고행을 행하는 종교인의 자세'가 연상되는데, 시인의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표현, 그리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겠다는 의지, 초월적인 자세 등이 종교적 색채를 더 띄게 하는 듯합니다.
겨울바다는 황량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해 주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곤 할 때가 있습니다. 가장 바닥까지 내려가야 올라올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라는 말처럼,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은 항상 존재합니다. 이 시 역시, 그러한 인생의 순리를 '자아 성찰과 종교적 믿음'을 통해 깨닫자는 시인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은 아닐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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