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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이해인, <봄 햇살 속으로> (시 수집 11)

by 알쓸수집가 202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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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 속으로>, 이해인

 

긴 겨울이 끝나고 안으로 지쳐 있던 나

봄 햇살 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간다

 

내 마음에도 싹을 틔우고

다시 웃음을 찾으려고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눈을 감고

들어가고 또 들어간 끝자리에는

 

지금껏 보았지만 비로소 처음 본

푸른 하늘이 집 한 채로 열려 있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요즘에 어울리는 시, 이해인 시인이자 수녀님의 <봄 햇살 속으로>입니다. 이해인 시인은 1945년 강원도 양구 출생입니다. 현재 부산의 성 베네딕도수녀회 수도원에 계신 시인은 '시를 쓰는 수녀'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세속의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수도사로서는 많은 걱정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현재는 그러한 고비 역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시를 쓰고 있습니다.

 

1970년에 <<소년>>에 <하늘>을 발표하며 등단한 시인은 자연과 삶의 따뜻한 모습, 수도사로서의 바람 등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의 시에는 자연의 모습이 담백하게 녹아들어 있으며, 읽는 내내 편안한 분위기가 이어집니다. 힐링을 주는 시들이 많이 알려져 있어, 그녀의 시집은 잠시 쉬어가는 그루터기와 같기도 합니다. 또한 종교에 발을 담근 그녀이기에 종교적 색채를 띄는 시들도 많죠. 그런 종교적 색채는 시를 어렵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친숙한 숭고함을 심어줌으로서 별 볼일 없는 대상도 아름답고 숭고하게 그려냅니다.

 

이 <봄 햇살 속으로> 역시 시인의 사상과 운율감을 잘 나타낸 시입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시 속으로

시는 3연 8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뜻한 봄을 만끽하는 모습을 전 행에 걸쳐서 그리고 있습니다. 1행에서의 나는 우리 모두일 것입니다. 사람은 겨울에 털옷과 이불 속에서 움크리고, 동물은 겨울잠을 자며, 식물은 땅 속에서 죽은 듯이 작은 생명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서운 추위에 생존을 위해서 에너지를 쓰니 모든 만물이 지쳐있죠. 비로소 봄이 오자, 싹을 틔우고 웃음을 찾으려고 합니다. 나무 한 그루가 된다는 것은 생명의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는 존재가 되겠다는 의미입니다. 나무가 새싹을 틔우는 모습은 대단히 생명적이면서 웅장합니다. 그 나무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위해 눈을 감고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보통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어둠이 자리합니다. 눈을 감으면 어둠은 더욱 짙어지죠. 하지만 따뜻한 봄 햇살이 비추는 날, 눈을 감으면 어둠이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이 오듯, 어둠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처음 보는 '푸른 하늘'을 발견하죠. 그리고 푸른 하늘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집 한 채로 표현하여, 마지막에서 우리는 봄이 완연한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어둠 역시 부정적 공간으로 그려지기보다는 봄을 위한 자연의 순리로 그려집니다.

 

이 시는 '포근한 자연', '평온한 삶'을 잔잔하지만 확실한 이미지의 언어를 통해 선명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봄동산에 올라 만개한 꽃과 푸른 새싹들을 보며, 그 한가운데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그런 기분이 드는 예쁜 시입니다.

 

♠개인적인 의견

눈을 감고 푸른 하늘을 상상하면, 현실의 어떤 공간에 있든 마음이 탁 트이고 평온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명상의 힘과 같죠. 시인의 시를 읽으면, 마치 명상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차분한 언어, 하지만 구체적이고 뚜렷한 이미지를 통해서 고요하지만 역동적인 자연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으며, 나 자신이 그 자연의 일부가 된 마냥 느끼게 해 줍니다.

 

이해인 시인의 삶에 대한 철학이 담긴 인터뷰를 읽으며, 그녀의 시 세계에 더욱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https://www.hani.co.kr/arti/well/people/10797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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