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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시 수집 15)

by 알쓸수집가 2023.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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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영화(映畫)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 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이 시는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을 담은 대표적인 시 중 하나로 뽑히는,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입니다. 이 시를 쓴 황지우 시인은, 1952년 전남 해남 출생입니다. 1980년에 <연혁>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고, 그해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이 시가 표제시로 등록된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1983년에 발표된 시입니다.

 

황지우 시인은 형식을 파괴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 왔습니다. 또한 이 시에서 알 수 있듯이 풍자시의 대표 시인으로서, 풍자와 부정의 정신,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민중들의 슬픔을 드러냈습니다. 물론 그의 시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일상적인 소재로 아름다운 시들도 많이 썼지만,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나는 너다>>, <<게 눈 속의 연꽃>> 등의 시가 워낙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죠. 민감한 정치부터 일상의 사랑까지 다양한 시를 써 온 황지우 시인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감상해 보죠.

 

 

1. 1983년, 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

이 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기에 대해 알아봐야 합니다. 당시는 1979년, 12.12사태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군부가 1980년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이후에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독재 정권을 강화하던 시기입니다. 전두환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고, 1981년 2월에 개정된 새 헌법에 따라 간접선거로 1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황지우 시인의 등단과 맞물려 독재정권이 시작되었고, 황지우 시인은 문학인으로서 이러한 정치권의 모습에 강한 비판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1980년대 초는 여러 경제 산업 육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산업이 성장하던 시기지만, 독재와 부의 쏠림 현상으로 인해서 일반 소시민들은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경제적으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부품처럼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 시의 시작과 끝인 애국가에는 바로 그러한 당시 사회상이 담겨 있습니다. 애국심 고취를 위해 극장에서 무조건 애국가를 강제적으로 먼저 불러야 했던, 그 모습이 시의 시작이며, 애국가가 끝나면 다시 자리에 앉아 구속되는 모습이 시의 끝입니다.

 

 

2. 새들은 세상을 뜨지만, 우리는 세상을 뜨지 못한다

시에서 가장 대비되는 것은 '우리'와 ''입니다. 삼천리 화려 강산에 있는 존재이지만, 우리는 그 땅에 갇혀서 애국가를 부릅니다. 반면 새들은 갈대숲을 자유롭게 이룩합니다. 6,7행에서의 끼룩거리면서 / 낄낄대면서는 마치 새의 울음소리가 비아냥거리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음을 말합니다. 날개를 가진 새와 날지 못하는 우리를 대조하면서 시인은 '억압된 민중들의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인 역시 그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군중 속의 한 명일 뿐입니다.

 

시인 역시 새들을 따라서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이라는 소망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뒤이어 다음 행에서 '하는데'라는 시어의 시작과 함께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하는데'를 일부러 행 구분하여, 이상과 현실의 구분을 아주 단정지어 말하는 구성은 억압된 현실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극대화시킵니다.

 

마지막으로, 애국가를 마무리하며 자리에 앉습니다. 시에서 마지막 애국가 가사들은 군부독재 정권에 소속된 시민으로서, 벗어날 수 없는 족쇄와 같음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인 애국가가 국가에 대한 충성, 애국심, 국가의 희망 등을 나타내지만 여기서는 '족쇄'와 '국가라는 이름하에 누르고 있는 억압'일 뿐입니다. 마지막 행의 '주저앉는다'는,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담긴 표현입니다. '앉는다 / 주저앉는다'라는 유사 어구를 통해서 깊은 좌절감을 나타내며 시는 끝납니다.

 

이 시는 대조, 반어 등을 통해서 당시 사회에 대한 풍자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새들과 우리의 비교, 새들의 비웃음 소리, 애국가라는 벗어날 수 없는 족쇄, 화려강산이라고 하지만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는 땅을 말함으로서, 군부정권에 대한 저항감을 직접 드러내죠. 저항이라는 의지가 직접 드러나진 않지만, 애국가를 통한 강요된 의식 자체에 대한 풍자를 통해서 비판적 의식을 모든 행에서 드러내고 있는 시입니다.

 

주제 : 군사독재로 인해 피폐된 당시 사회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비판, 좌절감
소재 : 애국가와 시
특징 : 대조를 통해서 비판하고자 하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비판, 유사 어구의 반복(끼룩거리면서/낄낄대면서, 앉는다/주저앉는다)으로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냄

 

 

♠ 개인적인 감상

최근 전두환 씨의 손자가 전두환 일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폭로하여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서 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시인은 풍자를 통해서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 시가 바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입니다.

 

이 시는 당시 전두환 정권의 집권 시작부터 황지우 시인의 머릿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읽으면 왜 이 시가 민주투쟁의 대표적인 시 중 하나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새'와 '우리'라는 대조선명한 이미지의 어구들을 사용하여 전하려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애국가를 '족쇄'로 표현한 비유는, 신선하기까지 합니다. 한국 근현대시에서 애국가를 이러한 의미로 사용한 시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곧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돌아옵니다. 당시의 군부정권에 대항한 시민들을 생각하며, 이 시를 감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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