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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안도현, <스며드는 것> (시 수집 16)

by 알쓸수집가 2023.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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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라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1961년, 경북 예천 출생입니다.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 하면 <너에게 묻는다>가 대표적입니다. 시의 제목은 모르는 분들도 있지만,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라는 구절을 들으면 누구나 '아' 하고 시 전문을 기억해 낼 것입니다.

 

그는 사소해 보이는 사물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섬세하게 자극하는 시인입니다. <너에게 묻는다>는 길가에 버려진 연탄재를 통해서 '누군가를 위한 희생적인 사랑'을 간결하면서 아름다운, 그리고 뇌리에 박히는 어조로 말하고 있죠. 그는 백석 평전을 집필할 정도로 백석 시인에 대해 연구하고 그의 시를 좇았는데, 개인적으로 안도현 시인의 문체에서는 백석 시인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가 나타나는 듯합니다. 이 <스며드는 것>은 간장게장이라는 일상적인 소재에서 '희생적 사랑'을 발견한, 시인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시입니다.

 

 

1. <스며드는 것>에 대해

이 시는 간장게장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간장게장 하면 '맛있는 음식'이 떠오르죠. 하지만 시인은 간장에 담궈진 게에게서 '모성애'를 발견합니다. 알을 품고 간장에 절궈진 게를 한참 동안 바라봤을 것입니다. 이 시를 읽고 나면, 모성애와 함께 희생에 대한 슬픔, 그리고 별 거 아닌 식재료로서 이용해 왔던 게도 하나의 뜨거운 생명체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시에서의 꽃게는 알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새끼들을 지키려고 합니다. 간장이 몸으로 스며들수록, 알을 더 꽉 껴안고 웅크립니다. 웅크리다 보니 제일 밑바닥에 가라앉게 되죠. 하지만 간장은 꽃게의 몸을 점점 움직일 수 없게 만듭니다. 물들입니다. 꽃게의 뜨거운 모성애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꽃게는 '모성애'와 '희생적인 사랑'을 가진, 하나의 인격으로서 존재합니다. 자신의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은 인간과 다름이 없습니다. 주위는 어두워져서 어스름한 상태가 되고, 이윽고 꽃게는 이 현실, 즉 자신이 간장에 절여져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함을 인지합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겁에 질려 있을 것입니다. 연약한 존재죠. 이를 위해 꽃게는 마지막까지 모성애로 가득한 말을 알들에게 합니다. '불 끄고 잘 시간이야'라고요. 마치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아이의 순을 꼭 가리고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듯한 먹먹함이 일어나는 마지막 두 행은, 이 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꽃게의 모습'을 통해서 '모성애와 희생적인 사랑'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꽃게에 감정이입이 된 우리는 모든 생명체는 자식에 대한 헌신과 사랑, 희생정신을 가지고 있음을 인지합니다. 그리고 꽃게와 나를 하나로 묶게 됩니다. 꽃게의 마지막 말은 '평소에 우리가 아이에게 하는 가장 평범한 말'이면서,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애뜻한 말'이 되어, 먹먹함을 자아냅니다.

 

2. 왜 <스며드는 것>이 제목일까?

제목을 모른 채, 시를 먼저 읽으면 <간장게장>과 같은 제목이 떠오를 수 있지만, <스며드는 것>이 제목입니다. 여기서 스며드는 것이란, 기본적으로는 간장입니다. 꽃게의 몸에 간장이 스며드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알들에게 스며드는 엄마의 사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시의 전체에는 '사랑과 희생'이라는 감정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시인은 바로 이 두 감정이 읽는 이의 마음에 스며들도록, 제목을 이렇게 정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의견

이 시를 알게 된 동기가 특이합니다. TV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에서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 그때 이시를 알았기 때문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p5rHloZySFY 

 

물론 프로그램에서는 김준현 씨의 농담으로 재미있게 끝맺어졌지만, 이 시를 읽고 나면 '엄마'와 '사랑'이 떠오르면서 울컥하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3해에서의 '울컥울컥 쏟아진다'는 것이 이러한 감정이 쏟아진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시는 '일상적인 소재에서 어떤 특별한 감정을 찾고, 그 감정을 아름답고 감성적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합니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와 같이 의외의 소재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감정을 드러냄으로서, 머리와 가슴에 어떤 충격감을 주는 시입니다.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거나, 식용이라고 어떤 감정이 없이 대했던 생명체도 모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생명으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본능적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떨 때는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반인륜적인 범죄(아동학대)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의 안위와 쾌락을 위해 자식을 위험에 빠트리지는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자식들을 위하여 따뜻한 말을 건네는 어미 꽃게의 모습을 우리 모두가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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