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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김수영, <풀> (시 수집 24)

by 알쓸수집가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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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눞는다


 

 

4월이 되니 여기저기서 솟아난 풀들이 이제는 제법 많이 자랐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바람이 많이 불어 막 올라온 풀들에게 많은 시련이었지만, 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죠. 바람과 함께 온 비 덕분에 풀들의 뿌리는 더 단단해졌고, 더 커질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런 풀을 보면 떠오르는 시, 김수영 시인의 <>입니다.

 

 

1. 참여시 김수영의 마지막 작품

김수영 시인은 한국 시문학사에서 '참여시'로 한 획을 그은 분입니다. 그는 4.19와 5.16군사정변을 몸으로 느끼면서 억압된 민중들의 애환을 어루만지면서 민중들의 저항을 일깨우는 '참여시'를 창작했습니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시 <폭포>는 그 초기에 쓰인 시로, 폭포의 모습에서 '꿋꿋이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연상한 시입니다. 

https://c-knowledge.tistory.com/55

 

김수영, <폭포> (시 수집 22)

,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c-knowledge.tistory.com

 

그리고 이 <풀>은 참여시의 절정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는 김수영 시인의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이죠. 김수영 시인은 1968년 6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시는 그가 그 직전인 1968년 5월 29일에 창작한 시입니다. 참으로 극적인 시이죠. 마지막 시가 그를 대표하는 시가 되었으니, 김수영 시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시는 영원히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2. 풀과 바람, 대립의 이미지

이 시는 3연 18행의 시입니다. <폭포>처럼 자연물에서 연상한 시이지만, 관념적인 표현들을 쓴 <폭포>에 비해서는 간결한 시입니다. 이 시의 소재는 '풀'입니다. 풀은 비바람에 날려 눕지만 다시 일어나지요. 이 자연현상에 시인은 '꺾이지 않는 민중의 의지'를 담았습니다.

 

시의 가장 큰 특징은 ''과 '바람'의 대립입니다. 바람풀을 계속 쓰러트리고 울리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은 끝내 바람보다 먼저 일어납니다. 김수영 시인은 아마 ''을 '억압받지만 잘못된 현실에 저항하여 끝내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민중'으로 봤을 것입니다. '바람'은 그러한 민중을 억압하는 지배새력이죠. 김수영 시인은 풀과 바람의 대립과 '눕다, 울다, 일어난다' 등의 동작을 나타내는 시어 반복을 통해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 풀은 1연에서 동풍에 나부껴 눕습니다. 풀은 울고, 날은 흐려져서 더 울기만 합니다. 계속 누워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2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보다도 먼저 눕고 운다는 것은 굴욕적인 자세를 의미합니다. 지배세력에 겁나 먼저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민중들의 현실이죠. 하지만 2연의 마지막에서는 앞에서 나왔던 시어들과 달리 '일어난다'라는 대립적인 시어가 나타납니다. 계속 누울 수밖에 없지만 결국 다시 일어나게 되어 있는 풀의 모습, 그것은 결국 승자는 우리 민중이 될 것이라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3연에서는 이 의지와 희망이 강화됩니다. 먼저 일어나고, 먼저 웃는다고 했습니다. 웃는다는 것은 시련의 완전한 극복을 의미합니다. 비록 다시 바람이 불면 누울 수밖에 없지만(마지막 행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은 다시 일어나 희망을 노래할 것이라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죠. 김수영 시인은 이러한 풀의 모습을 통해서, 민중들에게 시련이 찾아와도 그것을 버티고 다시 일어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당시 1960년대는 4.19 이후 다시 찾은 자유고 5.16으로 무너졌습니다. 민중이 풀처럼 일어났지만 다시 짓눌린 상황이죠. 이를 김수영 시인은 극복할 것이라고 '풀'에 비유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개인적인 감상

'민초'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백성을 의미하는 말로 '질긴 생명력을 가진 잡초'에 비유한 말입니다. 이처럼 풀은 예부터 민중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보잘것없고, 연약하여 바람에도 쉽게 쓰러지지만 그 뿌리는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시련에 굵어지고 단단해져서 쉽사리 뽑히지 않죠. 김수영 시인은 1960년대 독재 정권에 의해 자유를 잃고 억압된 민중들, 하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서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 포기하지 않는 민중들의 모습을 보며 '풀'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 시를 통해 민중을 위로하면서, 풀처럼 꺾이지 않는 삶을 살자고 독려하려 했을 것입니다. 비록 그는 민중들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시 <풀>은 김수영 시인을 영원히 꺾이지 않는 시인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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