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모아모아 시

장석남, <마당에 배를 매다> (시 수집 41)

by 알쓸수집가 2023. 5. 12.
728x90
반응형

<마당에 배를 매다>, 장석남

 

마당에

綠陰 가득한

배를 매다

 

마당 밖으로 나가는 징검다리

끝에

몇 포기 저녁별

연필 깎는 소리처럼

떠서

 

이 세상에 온 모든 生들

측은히 내려보는 그 노래를

마당가의 풀들과 나와는 지금

가슴 속에 쌓고 있는가

 

밧줄 당겼다 놓았다 하는

영혼

혹은

갈증

 

배를 풀어

쏟아지는 푸른 눈발 속을 떠갈 날이

곧 오리라

 

오, 사랑해야 하리

이 세상의 모든 뒷모습들

뒷모습들


 

1. 배를 매며-배를 밀며-그리고 마당에 다시 배를 매고

이 시는 장석남 시인의 연작시 <배를 매며>, <배를 밀며>에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시입니다. 장석남 시인의 가장 잘 알려진 시 중 하나 <배를 매며>가 연작시임을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하지만 이 연작시 전부를 읽으면, <배를 매며> 하나만을 읽을 때와는 느낌이 다릅니다. <배를 매며> 하나만을 읽으면 예쁜 사랑에 대해서 노래했다는 생각만 들지만 세 편을 읽으면 사랑과 이별에 대한 속성, 다시 사랑을 기다리는 이 끝없는 흐름에 대한 깊은 고찰이 느껴지죠. 그리고 우리 역시 사랑-이별-기다림이라는 이 순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고, 인간은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https://c-knowledge.tistory.com/72

https://c-knowledge.tistory.com/74

 

장석남, <배를 밀며> (시 수집 40)

, 장석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c-knowledge.tistory.com

 

이 <마당에 배를 밀다>는 두 시와 마찬가지로 2001년 시집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에 실린 시입니다. 시를 한번 감상해 볼까요?

 

 

2. 마당에 배를 매두고 사랑을 기다리다

앞선 두 시에서는 배가 각각 사랑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사랑을 찾아 떠나는 수단이 되는 듯합니다. 1연에서는 녹음 가득한 배를 마당에 맵니다. 자신의 마당에 배를 매두는데, 녹음이 가득하다는 것은 생명력과 활기가 가득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즉 자신의 마음이 사랑에 대한 기대로 활기를 띄고 있거나 새로운 사랑을 맞이할 준비가 된 상태임을 의미하죠.

 

2연에서의 저녁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굳이 저녁별을 연필 깎는 소리처럼 뜬다고 표현한 것은 다양한 감각을 보여주면서 시의 다채로운 분위기를 연출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3연 역시 노래라는 청각적 감각을 다른 시각적 대상들과 연결하면서 시의 배경을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화자는 가슴 속에 그 노래를 쌓고 있는지 되묻습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어떠한 영혼, 혹은 무형의 정신이지 않을까요.

 

우리 인간은 항상 살면서 사랑을 갈구합니다.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연은 4연입니다. 밧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 영혼은 사랑을 밀고 당기며 생을 보내는 우리 내면을 의미합니다. 이를 '갈증'이라고 표현한 것 역시 사랑에 대한 갈증으로 해석할 수 있죠.

 

화자는 이렇게 사랑에 대한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곧 배를 풀어서 사랑을 찾아갈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비록 그 길은 눈발 속으로 가는 것처럼 시련이 있겠지만, 이 역시 사랑의 과정임을 인지하고 결연하게 기다리고 있죠. 마지막 6연에서는 왜 굳이 뒷모습을 사랑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앞으로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사랑을 찾아서 지금까지 걸어왔던 뒤의 여정들도 전부 '소중한 사랑'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매체에서 사랑하는 상황이 나오면 항상 앞모습과 더불어 뒷모습이 비춰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빛이 비추는 연인들의 뒷모습에서 뜨거운 사랑을 느끼죠. 이러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뒷모습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 개인적인 의견

사랑의 속성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별을 하여 사랑이 싫어져도 세월이 지나 다시 마음에서 새싹이 자라면 사랑을 기다리고, 시련이 같이 있을 것임을 알면서도 먼저 사랑을 찾아나서게 되기까지 하죠. 시인은 연작시의 마지막 시로 이러한 사랑의 순환을 노래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녹음이 가득한 배, 즉 사랑의 감정이 다시 싹틀 준비를 하고 있는 마음에 대한 묘사를 시작으로, 마지막에는 그 배를 타고 다시 바다로 나갈 것임을 암시하지 않았을까요. 사랑의 힘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