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고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1. 농민의 감정을 대변한 농민시인 신경림
신경림 시인은 193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955년 <<문학예술>>에 <갈대>, <묘비>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습니다. 이후에 그는 시 활동을 멈추다 약 10년이 지나고나서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합니다. 이후에 나온 첫 시집이 그 유명한 <<농무>>입니다. 신경림은 농민의 삶과 고달픔을 따뜻한 서정적 어조로 다룬, '농민시인'입니다.
노동시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는 시를 써온 시인은, 농민의 삶의 애환과 더불어서 당시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의 발전과 산업화를 위한 희생이 강요되던 시기의 울분과 고뇌를 같이 시에 담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항시, 민중시와는 다른 서정적 특징을 바탕으로 하였고 이는 대중들에게 공감의식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그의 시는 민중의 눈높이에 맞춰져있었기에 더더욱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죠.
오늘 감상하는 <가난한 사랑 노래> 역시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한 가난한 청년의 삶을 바라보면서, 가난하다고 하여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울분을 노래한 시입니다. 신경림 시인을 '농민'에서 갇히지 않고 '민중' 전체를 대변하기도 한 시인으로 불리게 만든 시입니다. 부제로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고 지은 것은, 이 시를 통해 신경림 시인이 당시의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따뜻한 위로를 주려 했고, 당신의 어려움을 알고 있고 이 어려움은 고쳐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고찰시키려 했다는 점을 알 수 있죠.
2. 설의법과 도치법으로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가난하다고 해서 ~~를 모르겠는가'라고 하는 설의법 구절의 반복입니다. 또한 이 문장은 도치가 되어 각 스토리의 전환점에서 먼저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서 시인은 '가난하다고 하여 이러한 인간적인 감정들을 모르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합니다.
1~3행은 '외로움'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4~7행은 '두려움'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8~11행은 '그리움'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12~15행은 '사랑'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는 모두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감정들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르고, 포기해야 하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감각을 동원했습니다.
외로움에서는 '새파란 달빛'(시각적), 두려움에서는 '점을 치는 소리와 호각소리 등'(청각적), 그리움에서는 '새빨간 감 바람소리'(시각적, 청각적), 사랑에서는 '뜨거운 네 입술'(촉각적)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렇게 다양한 감각적 표현을 사용하여 서정적이고 인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이 모두 인간이 느끼는 오감에 해당하기 때문에, '감정을 모를 리 없다'라는 메시지와도 연결되죠.
3. 가난하다고 해서 이를 다 버려야 하는가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 사랑 모두 인간적인 감정입니다. 즉 이를 가지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죠. 하지만 당시 1970~80년대에는 산업화로 인해 도시 노동자들은 이러한 인간적인 감정들조차 제대로 가지지 못했습니다. 강압적이고 희생 강요적인 정부로 인해서, 노동자들은 기계처럼 취급받았죠. 그렇다고 해서 삶의 질이 좋아진 것도 아니었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모를리 없는 대상의 마지막으로는 '사랑'이 나오는데, 이 사랑과 관련하여 15행에서 '터지던 네 울음'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는 가난하기에 인간을 위한 가장 따뜻한 감정인 사랑조차 할 수 없어, 사랑하는 사람을 돌아서야 했고, 이때의 울분을 표현한 것이죠.
그리고 뒤이어서, 가난하다고 하여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하는 메시지로 시는 마쳐집니다. 마지막 행을 통해서 시인은 '가난 때문에 인간적인 감정들조차도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당대의 현실을 서정적 시로 비판한 셈이죠.
♣ 개인적인 의견
이 시의 제목이 <가난한 사랑 노래>인 이유는 '가난하지만 사랑을 모르지 않는다'는 시의 중요한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가난해도 사랑을 아니, <가난한 노래>가 아니라 <가난한 사랑 노래>라고 분명히 표현한 것이죠. 이 시는 요즘의 젊은 세대의 현실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3포 세대라고 하죠.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현실, 시대는 다르지만 그 슬픔은 비슷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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