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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조지훈, <완화삼> (시 수집 44)

by 알쓸수집가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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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화삼>,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1. 청록파 시인이 청록파 시인에게

조지훈 시인은 박목월, 박두진 시인과 함께 <<청록집>>을 발간한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조지훈 시인은 '고전적인 미, 불교적 색채'를 시에 잘 담아내어 '한국의 고전적인 미학'을 표현한 시인이라 불리는데, 이 시 <완화삼> 역시 나그네라는 한국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당시 일제 치하와 광복 후의 혼란 속에서 머무를 곳 없이 정처없는 떠돌음을 반복하고 있는 애달픔을 노래한 시입니다. 제목 완화삼의 완화는 '꽃을 즐긴다'라는 의미입니다. 완화삼은 즉 3연의 '소매 꽃잎에 젖어'라는 행에서 알 수 있듯이, 꽃이 물들은 적삼을 말하거나 꽃을 감상하고 있는 나그네 자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조지훈 시인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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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를 탄생시킨 시라는 점이죠. 이 시는 조지훈 시인이 당시 같이 활동하던 박목월 시인에게 보낸 시로, 박목월 시인은 이 시에 대한 화답으로 <나그네>를 지어 보낸 것입니다. <나그네> 역시 나그네가 등장하고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많은 접점이 있는 시죠. 오늘은 조지훈 시인의 '한국적인 미와 당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애달픔'을 표현한 <완화삼>을 감상해 보죠.

 

 

2. 구슬피 우는 산새이자 나그네

나그네는 전통적으로 길을 떠나거나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선비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이 시는 1946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조지훈 시인은 이 시기 적전까지 일제 치하에서 머무를 곳 없이 돌아다니는 지식인이었습니다. 1946년은 해방 이후이지만 해방 직후의 한국은 굉장히 불안정하였고 민족이 하나가 되어 나라를 다시 안정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강대국들이 나라를 찢어놨죠. 조지훈 시인은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정처없이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자신, 나아가 우리 민족들'에 대한 슬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나그네로 표현했죠.

 

1연에서는 자연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 자연은 차가운 산, 멀기만 한 산입니다. 내가 밟고 있는 산이 차가우니 화자가 처한 현실이 부정적임을 알 수 있고, 이상과도 같은 하늘이 먼 것을 보니 꿈꾸는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2행에서의 '산새'는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슬피' 울고 있는 거죠.

 

2연에서는 나그네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물길은 칠백 리라는 자연적 표현을 통해서, 그 물길을 따라가는 나그네의 모습이 그려지죠. 그리고 3연에서는 나그네가 꽃을 감상하고 강마을의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잠시 위안을 얻습니다. 제목의 소재가 된 3연은 나그네의 고단한 삶을 잠시 위로하지만, 동시에 저녁이라는 배경과 4연에서의 지는 꽃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그 위로가 일시적이며 다시 어두운 현실이 찾아올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마을 역시 꽃이 지듯 민족이 겪는 시련이 찾아올 것이며 자신은 그곳에서 다시 떠나야 하는 처지임을, 드러내고 있죠. 

 

마지막 4연의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는 고려 말 이조년의 시조인 <다정가>와 서로 통하는 의미입니다. 다정과 다한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나그네는 다시 달빛 아래에서 고요히 걸음을 재촉합니다. 빛 하나만 머리 위에서 희미하게 보이고, 주변의 어둠 속에서 나그네는 방황하며 흔들립니다. 당시 시인의 애달픈 삶, 그리고 민족의 슬픔을 자연과 함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이렇게 전통적인 3음보 율격과 나그네라는 고전적인 미를 가진 소재, 그리고 자연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여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도 정처없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민족의 삶'을 그려냈습니다. 조지훈 시인의 한국적인 미가 가미되어, 시는 고풍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슬픔과 고달픔입니다. 

 

 

♣ 개인적인 의견

제목 완화삼의 의미를 처음 보면 알기 어렵습니다. 한자를 알고 한자의 뜻을 해석해야지 알 수 있죠. 하지만 그 뜻을 알면, 시의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조지훈 시인의 언어는 하나하나가 고풍적이며 전통적인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일제와 광복 후 혼란이라는 상황을 연이어 겪는 지식인으로서, 좌절과 실망은 이로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시에서의 나그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위로를 얻어도 다시 고달프게 흔들리며 걸어가야 하고, 자연은 자신을 반겨주지만 곧 꽃이 지듯 시들어 갈 것이었으니. 하늘과 달빛은 나그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요. 희망이었을까요, 무상한 꿈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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