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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박목월, <나그네> (시 수집 46)

by 알쓸수집가 2023.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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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1. 자연을 소재로 향토적인 정감을 시에 담아낸 청록파 시인, 박목월

박목월 시인은 1916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시절부터 동시를 쓰며 시에 대한 감각을 키워나갑니다. '얼룩 송아지'라는 동요를 아시나요?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로 시작하는 이 동요를 모르는 사람보다도 아는 사람이 훨씬 많을 텐데요. 이 동요는 박목월 시인이 쓴 동요입니다. 동시에도 큰 센스가 있었던 이유는 어릴 적에 동시에서 시작하여 시적 감각을 키워 왔기 때문이죠. 태생부터가 남달랐던 박목월 시인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손꼽히는 시인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이름은 원래 '영종'이었습니다. 허나 후에 이름을 '목월'로 바꾸고 <문장>에 시를 발표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합니다. 그를 추천한 정지용 시인은 '북에는 소월이 있다면 남에는 목월이 있다'라는 말과 함께 그의 시를 예찬했습니다. 초기에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 <산그늘> 등을 발표하며 활동한 그는 1946년에 그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시집 <<청록집>>을 박두진, 조지훈 시인과 함께 출간합니다. 이후에는 6.25와 근대화, 독재 등을 겪으면서 많은 시작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청록파 시인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초기부터 '자연에 대한 풍요로운 감각과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향토적 서정시'를 많이 썼습니다. 그의 시를 읽으면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어떠한 향수, 그리움 등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은은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만을 묘사한 시가 아니라, 자연에서 향토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한 그의 시는 조지훈 시인, 박두진 시인과는 다른 의미로 한국적인 미를 살린 시라고 평받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시풍을 가장 잘 나타내며 가장 유명한 시, 바로 <<청록집>>에 수록된 <나그네>입니다.

 

 

2. 조지훈 시인의 <완화삼>에 화답한 시

이 시는 써진 특별한 일화가 있습니다. 바로 이 시가 조지훈 시인의 <완화삼>에 화답하는 시로 써졌다는 점입니다. 이 시에는 <술익는 강마을의 저녁놀이여>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이는 <완화삼>의 6행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4연 역시 거의 비슷하게 가져온 표현입니다. 이를 알고 시를 읽으면, 조지훈 시인과 박목월 시인의 특별한 관계, 그리고 이 둘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당대의 어떠한 복잡한 감정들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조지훈 시인의 <완화삼>이 궁금하다면?

https://c-knowledge.tistory.com/78

 

조지훈, <완화삼> (시 수집 44)

,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c-knowledge.tistory.com

 

3. 의도적인 명사 반복 - 작품에 정감의 균형과 비중을 위해

이 시는 5연 10행의 단형시입니다. 시는 몇 가지 반복적인 특징이 드러납니다. 일단 2연과 5연이 반복구입니다. 이것은 시인의 말에 의하면 "그 음악적 조화만이 아니라 작품에 정감의 균형과 비중을 살펴서 구성상의 배의(配意)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구마다 '나그네, 삼백리, 저녁놀'과 같이 명사로 끝나고 있는데 이러한 구성들은 '자연과 나그네가 조화를 이루는 정감'을 위한 의도적 선택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정감만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모티브인 나그네를 보면 정감과 함께 어떤 쓸쓸함, 애달픔이 느껴집니다. 가느네는 강나루를 건서거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갑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라는 표현이 유유자적한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밤에 이러한 길을 가는 모습은 나그네의 체념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나그네는 계속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존재, 그렇기 때문에 구름에 달 가듯 계속 정처없이 움직여야 하는 존재죠. 이 시가 <완화삼>에 대한 화답임을 고려하면, 당대 떠돌아 다녀야 하는 지식인, 나아가 민중의 애달픔을 녹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나그네의 길은 '삼백 리'입니다. 이는 '서로운 정서가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만큼 긴 거리를 의미 없이 움직여야 하는 애달픔이 담겨있죠. 4연에서는 향토적 정서가 묻어나오는 마을이 나타납니다. 아마 이곳에서도 나그네는 잠시 머물다 가야 할 뿐일 겁니다. 그래서 5연에서는 다시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의 모습이 나오죠. 이는 결국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길을 걷지만, 어딘가에 정착하지는 못하고 계속 발걸음을 옮기는 우리의 고달픈 처지에 대한 체념입니다. 

 

 

♣개인적인 의견

이 시는 박목월 시인이 스스로 '<<청록집>>에 수록된 모든 작품에 통하는 작자의 정신의 전우주 같은 느낌'이라고 밝혔듯이, 박목월 시인을 대표하는 작품이면서 당시 청록파 시인의 의의를 논할 때 항상 같이 언급되는 시입니다. 향토적 자연과 그 자연 속의 나그네를 아름다운 가락으로 그려낸 서정시이며 그러면서도 쓸쓸함이라는 감정이 부각되게 하여 당시 시대적 애환까지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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