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사랑>,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 부는 저녁 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을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1. 소박하고 순수한 시어를 사용한 도종환 시인의 언어가 잘 느껴지는 시
도종환 시인의 시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중의 모습을 담은 시부터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한 뒤에 그 슬픔을 노래한 시들, 아름다운 사랑이 깃든 시들, 심지어 감옥생활의 느낌을 다룬 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시를 썼죠. 그렇지만, 그의 시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하나 있으니, 바로 '소박함과 순수함'입니다.
그는 심오한 시어보다는 소박하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시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아주 아름답게 드러냄으로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죠. 그런 그의 언어가 드러나는 대표적인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지난번에 알아봤는데, 오늘은 그의 사랑시 중 하나인 <가을사랑>을 가볍게 감상해 보죠.
*도종환 시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https://c-knowledge.tistory.com/70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시 수집 36)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곱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c-knowledge.tistory.com
2. 사랑은 가을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 같다
이 시는 5연 12행으로 이루어진 시로,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같은 절의 반복으로 통일된 운율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가을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편안함을 주는 까닭은 이 시의 통일된 운율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다'라는 구절이 1연, 3연, 5연에서 반복되며 '당신을 ~~기 때문에'가 2연, 4연에서 반복됩니다. 이 반복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을의 어떤 풍경과 비슷한지를 통일감 있게 그려냄으로서, 시를 읽으면 한 폭의 가을 풍경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1연에서 당신을 사랑할 때의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다고 합니다. 가을은 열매를 맺고, 낙엽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는 풍족함의 절정인 계절이죠. 시원따뜻한 햇살을 맞으면 기분이 대단히 상쾌하고 편안할 것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것이 당신을 사랑할 때와 같다고 합니다. 그만큼 당신을 사랑하는 감정은 따뜻하고 풍요로우며 주위에 항상 있는 햇살처럼 항상 존재하고 있는 감정이죠.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는 감정이 요동치지만, 사랑을 시작하면 감정이 안정됩니다. 고백 직전의 요동치는 감정이 고백 직후의 편안한 감정이 되듯, 2연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화자의 마음은 바람 부는 저녁 숲이었다고 합니다.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마음이 요동치고 어쩔 줄 몰랐던 것이죠. 하지만 이제 화자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당신을 사랑하게 되어서, 마음은 다시 진정되고 은은한 억새처럼 있게 되죠. 여기서의 억새가 의미하는 것은 또 하나 있는데 억새는 바람이 아무리 휩쓸고 지나가도 쉽사리 뽑히지 않습니다. 이는 즉 화자의 마음이 사랑으로 인해 요동치면서도 당신을 사랑하는 감정은 억새가 뽑히지 않는 것처럼 놓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아닐까요.
3. 편안함, 오래보고 싶음
3연에서는 1연의 구성이 다시 반복됩니다. 여기서는 '갈꽃'이 등장합니다. 갈꽃은 눈부시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러한 갈꽃을 편안히 보는 것과 같다고 하죠. 이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화려한 꽃처럼 꾸며지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치 갈꽃을 편안히 보듯이 평온하고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갈꽃은 수수하지만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예쁜 꽃입니다. 이는 그만큼 화자의 감정이 순수하고, 진정으로 당신을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의미하죠.
이러한 당신은 화자에게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화자는 어둠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서 다시 만날 아침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죠. 이는 당신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사랑이 아닌 나의 희망, 빛과도 같다는 걸 의미합니다. 아침은 해가 뜨는 시간이죠. 1연에서의 가을 햇살과 4연에서의 아침이 서로 연결되며 당신은 햇살처럼 나에게 희망 그 자체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마지막 5연을 통해 화자의 당신에 대한 마음을 다시 정리하고 있습니다. 잔잔한 넉넉함. 조용하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속은 가득 차 있음을 의미합니다. 갈꽃, 잔잔한 넉넉함이 연결되면서 넘치는 사랑의 순수함이 잘 드러납니다.
♣ 개인적인 의견
도종환 시인의 시는 무엇보다도 쉽고 그만큼 감정이 잘 이입됩니다. 이 <가을사랑>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가을 풍경과 같이 그려내면서, 하나의 그림을 그려줍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니 가을햇살을 보고 있는 연인의 뒷모습이 그려집니다. 고요하게 가을햇살을 보고 있지만 꼭 맞잡은 연인의 손에서, 따뜻함과 희망, 위로가 보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를 읽으면 어떤 풍경, 어떤 사람이 그려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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