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1.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시인
몇 년 전이었을까요,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서 길상사 쪽의 산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작은 공원을 발견했었습니다. 그곳에는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가 크게 적혀 있었죠. 정확히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김광섭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와 관련이 있게 이름을 지었던 공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생들에게는 <성북동 비둘기>로 가장 잘 알려진 시인, 김광섭 시인은 1904년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26년 일본 와세다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 유학파로, 귀국 후에는 당시 일제 치하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민족의식을 심어주려 했다고 해서 1941년에는 약 4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시는 시기에 따라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 활동을 한 1935년부터는 주권을 잃은 우리나라의 울분, 연민, 광복에 대한 염원을 다룬 시들을 많이 썼습니다. 1935년에 발표된 시 <고독>이 대표적입니다. 광복 이후에는 광복의 기쁨, 전쟁으로 인한 상실 등을 다루었고, 후에 근대화가 진행되면서는 <성북동 비둘기>에서 잘 드러나듯, 공동체 삶에 대한 사회문제의식을 다루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말년에 이르러서는 시집 <<겨울날>>(1975)을 내면서 삶에 대한 회고적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첫 시집 <<동경>>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시집 <<겨울날>>까지, 다양한 시를 써내려갔습니다. 오늘은 그중 마지막 시집인 <<겨울날>>에 실린, 회고적 시 <저녁에>를 감상해 보죠.
2. 별과 내가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이 대구를 이루는 시
이 시는 시인의 마지막 시집에 실린 시입니다. 회고적인 경향의 시작 활동을 한 당시 시인의 시 중 대표적인 시입니다. 시는 대구와 대조가 사용되었습니다. 1연에서는 '하늘의 별'과 '지상의 나'가 서로를 마주봅니다. 단순한 문장의 반복이 아니라 대구를 통해서 서로가 연결되는 모습을 그림으로서, 별과 나의 운명적인 만남을 드러냅니다.
화자는 왜 별을 쳐다봤을까요. 그 답은 2연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집니다. 반면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지죠. 이 대조는 소멸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라진다고 하는 표현을 할 때는 보통 어둠과 연결지어서 합니다. 하지만 별은 어둠이 아니라 밝음 속에 사라지죠. 이는 별의 소멸은 일시적일 뿐임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나는 어둠 속에서 사라집니다. 이것은 당시 이 시를 쓴 시인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노년기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김광섭 시인은 1977년에 돌아가셨으니, 이 시집을 내고 2년이 되어 돌아가신 셈이죠. 별이 사라지는 것과 내가 죽어 사라지는 것은 모두 자연현상이지만, 서로 다른 속성을 같이 드러냄으로서, 시인의 현상황과 느끼는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냅니다.
3연에서는 윤회적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별과 화자는 짧은 순간이지만 깊은 관계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화자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하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죽음은 별과 이별함을 의미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시 만나랴라는 말을 통해서 내가 어디선가 다시 태어나 그 별을 만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을 통해 회고적 감상이 짙게 드리웁니다.
이 시는 이렇게 짧은 구성이지만, 대구와 대조를 통해서 만남과 이별에 대한 감정, 삶에 대한 회고, 윤회사상 등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맺은 그 깊은 관계를 잊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 개인적인 의견
김광섭 시인이 돌아가셨을 때, 이 시를 떠올리셨을까 싶습니다. <저녁에>에서 바라본 그 별을 떠올리며, 다시 만나자는 말과 함께 눈을 감으셨을까요. 지금 어딘가에서는 김광섭 시인의 영혼이 별을 바라보며 숨쉬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조금 더 위로 올라가서 별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새하얀 비둘기로 윤회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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