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그냥 걸어라
첫 걸음마 하는 아이처럼
그냥 걸어라
상처도 두려움도 모르는 아이처럼
그냥 걸어라
금기도 허락도 모르는 아이처럼
걷다 넘어지면 울고
울다 일어나 다시 걸어라
걸어오는 길들이 너를 이끌어주고
여정의 놀라움이 너를 맞아주리니
1. 노동시인 박노해
박노해 시인의 시집 중 가장 잘 알려진 시집은 첫 시집 <<노등의 새벽>>(1983)일 것입니다. 구로동단의 노동 현장을 소재로 하여 지은 시 <노동의 새벽>을 표제시로 한 이 시집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자들이 억압받는 현실의 사회와 이념에 대한 분노, 저항 등을 소재로 시를 써온 시인입니다. 최근의 시들은 이러한 시보다는 포용과 화해에 대한 시들이 많지만, 박노해 하면 이러한 노동시들을 가장 많이 떠올리죠.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195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박노해 시인의 본명은 '박기평'입니다. '평화의 기틀'이 되라는 이름이죠. 하지만 <<노동의 새벽>>을 낼 때부터는 필명인 '박노해'를 사용했습니다. 뜻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입니다. 이처럼 박노해 시인은 노동에 관심을 가지고, 노동자들의 현실과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해 왔습니다.
오늘은 2022년에 나온, 최근의 시집인 <<너의 하늘을 보아>>에 실린 시 하나를 감상해 보죠. 힘든 노동자의 현실을 몸으로 직접 겪으면서도 꺾이지 않았던 박노해 시인의 굳센 의지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는, 짧지만 강인한 시 <첫 걸음마 하는 아이처럼>입니다.
2. 그냥 걸어라
이 시는 6연 12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그냥 걸어라'라는 행의 반복입니다. 총 4번 반복이 되며 1~3연은 똑같은 위치에 반복됨으로써, 운율감을 형성합니다. 시인은 그냥 걸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처럼 말이죠? 바로 아이처럼 말입니다.
아이는 첫 걸음마를 할 때 상처를 입는 것, 넘어질까 두려워하는 것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나 걸음마를 하려고 하죠. 걷지 말라고 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냥 하려고 하는 그 마음 그대로 걸으려 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아이의 걸음 모습을 우리가 닮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을 나아가기조차 너무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3. 현실에 두려워하지 말고 길을 걸어라
우리는 자라날수록 눈앞에 닥친 현실에 의해서 내 갈 길을 잃어버립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기도 하고, 때로는 목표가 보여도 주저하며 나아가기를 거부하죠. 모진 세상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점차 자신감을 잃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우리에게 충격요법으로 '그냥 걸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4연에서는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또 줍니다.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이죠. 넘어져서 아프면 울라고 합니다. 이는 감정을 그대로 표출해 내라는 의미입니다. 감정을 다 표출했으면, 그 다음에는 다시 걷는 것만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말을 통해 '넘어지면 넘어지는 대로 울되, 걸을 때는 망설이지말고 걸어라. 괜찮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4.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걸어라
5연에서의 '걸어오는 길'은 나를 이끌어주는 존재입니다. 과거부터 걸어왔던 나의 길자취가 즉 나를 이끌어주는 그런 존재인 셈이죠. 그리고 '여정의 놀라움'은 나를 맞이해주는 존재입니다. 앞을 향해 걸어나가는 것은 새로운 길을 밝혀내는 것이고 이는 놀라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인은 '네 영혼이 부르는 길을 / 그냥 걸어라'라는 표현을 통해서 '내가 믿는 길을 그대로 나아가라'는 강한 메세지를 던집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의지를 다잡게 됩니다.
♣개인적인 의견
한 걸음 나아가기가 두려워 시간만 흘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때, 우리에게는 따끔한 조언 하나가 필요합니다. 박노해 시인의 <첫 걸음마 하는 아이처럼>은 그러한 역할을 하는 시 같습니다. 강하게 다그치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용기와 격려의 메세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길이 각자의 정답입니다. 그러니, 다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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