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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시 수집 63)

by 알쓸수집가 2023.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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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정호승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 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안고 웃어 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 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1. 슬픔에 손길을 거두는 시인, 정호승

정호승 시인의 시는 도처에 '슬픔'이 깔려 있습니다. 가난, 슬픔, 외로움 등 부정적인 감정이 시 곳곳에 있죠. 하지만 정호승 시인이 이런 시어들을 쓰는 것은 슬픔에 잠식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들이 관심을 일부러 두지 않는 그런 감정들에 손을 뻗어, 그런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보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정호승 시인은 '슬픔을 사랑하고', '외로움을 사랑하고' '슬픔과 외로움에 빠진 존재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시인입니다. 아래의 시들도 그러한 정호승 시인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시들이죠.

 

*정호승 시인의 대표적인 시들

https://c-knowledge.tistory.com/37

 

정호승, <수선화에게> (시 수집 8)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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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knowledge.tistory.com/39

 

정호승, <봄길> (시 수집 10)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c-knowledge.tistory.com

https://c-knowledge.tistory.com/49

 

 

 

 

 

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시 수집 17)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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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러한 정호승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초기시 하나를 알아보겠습니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입니다. 

 

 

2. 슬픔에 빠진 존재를 위한 시

이 시는 정호승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서울의 예수>>(1982)에 실린 작품입니다. '~되라, ~하라'라는 종결어미는 정호승 시인의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종결 어미입니다. 이러한 어미를 사용함으로서,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울림을 가지고 전달됩니다. 그 대상은 '슬픔과 좌절에 빠진 존재'입니다.

 

시는 총 4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연의 마지막 2행이 '~되라'라는 명령형 어미로 되어 있죠. 그 내용들은 모두 '슬픔과 좌절 속에서 일어나,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입니다. 1연에서는 '별', 즉 희망을 보고 걸어가, 그 희망을 자기 것으로 만들라고 말합니다. 2연에서는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슬픔을 사랑한다는 것은 슬픔을 부정하지 않고 의연하게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죠. 슬픔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그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고, 오히려 역설적으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1연과 2연에서 시인이 말하는 '되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물론 상황은 그만큼 여의치 않습니다. 1연의 2행에서,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는 대상이 처한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2연에서도 눈만 내리는 상황이 드러나는데 겨울밤의 눈은 끝없이 내리는 시련과 고난, 그리고 어둠을 의미하죠.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시인은 각 연의 마지막 행을 통해서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렇게 1, 2연은 시련-의지의 메시지순으로 구성이 되어 '희망의 의지'가 더욱 깊게 다가옵니다.

 

 

 

3. 희망을 짚고 일어나면 언젠가 부둥켜안고 웃으리라

3연과 4연에서는 이렇게 희망을 만들고 꿋꿋이 갈 길을 가면 있을 행복한 결말을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3연의 1~2행처럼 현재 세상은 아주 각박합니다. 절망할 틈, 슬퍼할 틈도 없는 절망과 슬픔의 세상입니다. 하지만 3행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라는 말에는 '기쁨과 행복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깃들어져 있죠. 슬픔과 절망이 깊을 수록 희망의 끈을 더욱 놓지 말라는 강한 의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아가면 어떤 기다림과 그리움을 만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봄눈'입니다. 봄눈을 맞이하면 그때서는 얼씨구나 부둥켜안고 웃고, 뺨 부비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4. 꿈을 받아라

마지막 4연은 다시 대상에게 꿈에 대한 의지를 심어주는 말로 마칩니다. 별을 보고 걸어가고, 희망을 만드는 사람은 1연 4~5행과 반복됩니다. 이들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을 걸으며 꿈을 받기를 시인은 바라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봄눈, 보리밭길은 꿈과 희망을 의미합니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공간을 걸으면서 시인은 마지막으로 이들이 '꿈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2번 똑같이 반복된 마지막 행으로 인해, 이러한 시인의 소망과 염원은 절정에 이릅니다.

 

 

이렇게 이 시는 '명령형 어미', '원하는 사람형의 반복', '유사 혹은 똑같은 구/절의 반복'을 통해서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 빠져서 절망하는 이들을 위해, 시인은 위로와 희망, 그리고 강한 의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실이 어두울수록 우리는 희망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어둠에 빠질 때, 희망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고 그 희망을 향한 염원은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럼 그 어둠을 계기 삼아 도약할 수 있습니다. '위기가 기회다'라는 말은 이렇게 어둠 속 배경에서 희망을 찾은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죠. 어둠에 계속 빠질지, 어둠을 발판 삼아 희망을 향해 나아갈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시인은 우리의 의식을 확실하게 해주기 위해 이런 시를 썼을 것입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가 더 궁금하다면?

https://c-knowledge.tistory.com/42

 

정호승, <먼지의 꿈> (시 수집 13)

, 정호승 먼지는 흙이 되는 것이 꿈이다 봄의 흙이 되어 보리밭이 되거나 구근이 잠든 화분의 흙이 되어 한송이 수선화를 피워 올리는 것이 꿈이다 먼지는 비록 끝없이 지하철을 떠돈다 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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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knowledge.tistory.com/60

 

정호승, <꽃을 보려면> (시 수집 27)

,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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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knowledge.tistory.com/82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시 수집 48)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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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knowledge.tistory.com/93

 

정호승, <풍경 달다> (시 수집 56)

,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1. 정호승 시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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