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 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1. 북정공원에 가면 비둘기 공원이 있다
김광섭 시인의 시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시 하면 아마 <성북동 비둘기>일 것입니다. 김광섭 시인의 후기 시 세계의 대표적인 시인 <성북동 비둘기>, 시집 <<성북동 비둘기>>(1969)의 표제시이기도 한데요. 지금도 성북동의 북정공원에 가면, 비둘기 공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성북동 비둘기>의 시 내용이 크게 걸려 있죠.
김광섭 시인의 후기 시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문제의식', '인간애가 담긴 시', '삶에 대한 회고적 시' 등 일상과 삶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는 소재들이 많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이 시는, 현대문명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에 대한 모습과 그중 대표적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비둘기의 애처로움을 그리고 있는 시죠.
예전에 북정공원에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왜인지 모를 적막함이 느껴졌었습니다. 도심과는 조금 멀리 떨어진 오르막 동네, 그것도 구석에 아주 작게 자리 잡고 있는 북정공원을 많이 방문하는 사람들은 없었죠. 이 공원 역시 구석 한켠으로 밀려난 자연의 모습을 대변하는 그런 모습이어서 그랬을까요.
*김광섭 시인이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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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저녁에> (시 수집 47)
, 김광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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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급격한 문명의 발달과 자연 파괴
우리나라는 문명이 급격하게 발달하면서 많은 사회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인간 소외, 자연 파괴 등이 대표적인 문제였죠.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지 못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하면서 자연은 파괴되고,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한 동물들은 도심으로 나오게 되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비둘기입니다. 이전까지는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었지만, 도심으로 나오게 된 비둘기들이 적응하면서 비둘기는 도시 경관을 해치고 병균을 옮겨다니는 유해동물 비슷한 위치까지 내려오게 되었죠.
시인은 이러한 자연 파괴와 비인간적인 현대 문명을 비판하고자, 비둘기를 소재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는 크게 3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연 : 산이 파괴되어 가는 모습
2연 : 거처를 잃고 자연의 향수를 느끼는 성북동 비둘기의 슬픈 현실
3연 : 평화와 사랑의 상징이던 비둘기에 대한 비인간적인 인식 변화
1연에서는 인간의 삶의 터전인 번지가 새로 생기며, 성북동 비둘기라는 자연의 존재의 삶의 터전이 없어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성북동 비둘기는 돌 깨는 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갑니다'. 자연이 파괴되는 모습에 자신 역시도 상처를 받고 좌절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죠.
물론 비둘기는 이전처럼 자연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하기 위해, 그리고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돕니다. 새파란 아침 하늘은 다행히 그대로였고, 똑같이 축복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하듯 날아다니죠. 아직 변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 애씁니다.
3. 하지만 자연은 파괴되어 갈 곳이 없다
이러한 성북동 비둘기의 노력에도, 자연은 파괴되었고 비둘기는 갈 곳이 없습니다. 2연의 첫 행 '메마른 골짜기'는 현재의 성북동의 모습을 비춥니다. 이러한 삭막한 공간에서 비둘기에게 필요한 '널찍한 마당'은 없고, 채석장의 소리만 '포성'처럼 울립니다. 비둘기에게는 개발 현장이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전쟁의 상황과 같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2연의 5행에서 '피난하듯' 비둘기가 도망쳤다고 말합니다.
2연의 마지막 행에서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는 것은, 그나마 남아있는 자연의 온기를 그리워하며 서글픔을 느끼는 비둘기의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비둘기의 이러한 행동들을 사람이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표현하여, '공감의식'을 불러옵니다.
4. 비둘기는 이제 사랑과 평화의 존재가 아니다
마지막 3연에서는 '사'로 시작되는 행이 반복되면서 일련의 운율감을 형성합니다. 이로 인해 '사람'과 공존하던 비둘기의 모습이 강조되고, 현재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파괴된 자연과 비인간적인 문명'이 선명하게 그려지죠. 비둘기는 결국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폐의 동물이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시인은 자연 파괴와 급격한 문명 발달의 문제점을 꼬집고 있습니다. 비둘기에 대한 인식 변화는 결국 우리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비둘기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우리가 비둘기의 터전을 몰아내고서 오히려 큰소리를 친 셈이죠.
♣개인적인 의견
저 역시도 길가의 비둘기를 보면 혐오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지하철이나 가게 안까지 제 집 드나들듯 들어오는 비둘기를 보면, '얘들은 대체 왜 이럴까?' 싶은 생각이 들죠. 하지만 그것은 삶의 터전을 잃은 비둘기들이 문명을 통해서라도 살고자 하는, 필사적인 저항일 것입니다. 누가 자신을 혐오하는 인간사회에서 살고 싶겠습니까. 이러한 모습을 우리가 만든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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