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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나희덕,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시 수집 60)

by 알쓸수집가 2023.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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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희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1. 나희덕 시인의 따뜻한 포옹이 잘 드러나는 시

나희덕 시인의 시는 '어머니의 모성애로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 주는 시' 같습니다. 잔잔하고 평온해 보이는 말투로 이루어진 시를 읽다보면 우리의 마음도 같이 잔잔해지죠. 물론 잔잔함은 따뜻함을 동반하여, 평온함에 가까운 잔잔함입니다. 이러한 나희덕 시인의 시 중 하나인 <그 복숭아나무 곁에서>는 복숭아나무라고 하는 타인을 대상으로, 타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소통,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해와 포옹까지 도달하는 그런 시죠.

 

*나희덕 시인이 더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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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와는 다른 그 복숭아나무에 나는 왠지 다가가기가 싫었다

이 시는 크게 2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연 복숭아나무에 대한 오해를 바탕으로 한 감정과 그것이 풀어지는 과정을, 2연 그것이 풀어져서 복숭아나무를 이해하며 복숭아나무의 그늘에 들어가게 되는 인식의 변화가 주된 내용이죠. 여기서의 복숭아나무는, 바로 '타인'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왜 '타인'을 복숭아나무라고 표현했을까요? 아마도 흰꽃과 분흥 꽃을 같이 가진 나무의 독특한 모습, 그리고 본질은 달콤한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존재라는 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다가가기 전에는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이었지만, 이해를 할수록 그 자체로 아름다운 존재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우리도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할 때 그러지 않나요? 타인을 처음 볼 때는 추측을 기반으로 여러 오해를 하기도 하죠. 때로는 그런 오해로 인해 다가가기가 꺼려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다가가면서 살펴보니 그런 오해가 괜한 오해였다는 점을 아는 사례도 많죠. 이런 일련의 과정을 시인은 '복숭아나무의 그늘로 들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1연의 1행, '여러 겹의 마음'은 화자의 편견을 의미합니다. 하나의 마음으로 추측되지 않기에 그 복숭아나무, 즉 타인 옆으로는 다가가고 싶지 않아했죠. 4행에서는 복숭아나무의 속성이 드러납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며 화자는 선입견을 계속 가집니다.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것이라는 선입견 말이죠. 흰색과 분홍색은 다른 계열의 색이니,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모습에서 어떤 이중성, 혹은 어울리지 않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3. 그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존재한다

이후 시는 타인의 본질을 깨닫고 타인에게 마음으로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7행에서 '수천이 빛깔'이 두 색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이중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만, 사실 사람의 마음에는 여러 감정들이 섞여 있습니다.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빛과 어둠에 따라서 색은 다르게 바뀌어가죠.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화자는 '타인이 가진 수천의 빛깔'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이런 본질을 멀리서 보고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간혹 어떤 문제에 대해서 답이 안 나오면, 한 걸음 떨어져서 멀리서 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는 나의 선입견을 버리고, 멀리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 대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화자 역시 이렇게 멀리서 객관적으로 보고 깨달았기에, '멀리서 알았습니다'라는 표현을 썼을 것입니다. 멀리서 본 복숭아나무는 너무나도 눈부심을 알았죠.

 

복숭아나무가 수천이 빛깔이 있는 이유는 바로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복숭아나무에 대한 인식은 변하게 되고, '나와 같은 존재의 선입견으로 인해 복숭아나무는 외로웠겠지만, 그래도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색을 다 피우기 위해 지금까지 왔기에, 외로운 줄도 몰랐을 거구나'라는 깨달음에 이르렀습니다. 화자는 이제 복숭아나무, 즉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겹의 마음을 읽게 된 것이죠.

 

 

4. 이제는 복숭아나무 그늘 밑에서 서로를 이해하다

이렇게 1연이 마무리되고, 2연으로 넘어가면 화자는 복숭아나무의 그늘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는 진정한 이해와 화해를 했음을 의미하며 타인을 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마지막, 저녁이 오는 소리는 무엇일까요? 저녁이라는 시간은 대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낮에서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면서, 나는 성숙해졌죠. 이러한 변화를 잘 드러내는 표현으로, 마지막을 통해서 '타인에 대한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 시는, 타인에 대한 인식 변화의 과정을 '복숭아나무'에 비유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습니다/~입니다와 같은 경어체 어미와 독백적인 어조를 통해서 '화자, 나아가 우리의 성찰'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고 전체적으로 평온한 분위기를 띠죠.

 

나희덕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타인의 본질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을 심어주려고 했던 것일 겁니다. 마치 내 마음에 이해의 초록나무 하나가 작게 자라는 듯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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