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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강은교, <사랑법> (시 수집 59)

by 알쓸수집가 2023.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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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법>,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1. 강은교 시인에 대해

강은교 시인은 1945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자라면서 연세대를 졸업한 그녀는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순례자의 잠>이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70년대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작 활동을 시작한 그녀의 시는 '허무의 관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초기의 시가 특히 그러한데 첫 시집의 이름이 <<허무집>>(1971)인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죠.

 

순수와 허무에 대한 자신 나름의 대항과 고찰을 바탕으로 특별한 시 세계를 구축한 그녀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현실적인 시각을 가지고 우리가 지닌 사회적/역사적 문제를 고민하는 것으로 시상을 넓혀갔습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시는 무조건적으로 하나의 감정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허무함 속에서도 다양한 감정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사랑법>은 1974년에 나온 시집 <<풀잎>>에 수록된 시입니다. 그녀의 초기 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 시는,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시들과는 다르게 관조적이고 인내하는 자세에 주목한, 조금은 특별한 사랑시입니다.

 

 

2. 사랑은 집착하면 안 되는 것

이 시는 7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상징적인 단어와 비유적 표현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하는 시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요? 시인은 시에서 말하길 '집착하지 않고 침묵하며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에서 집착으로 인한 범죄가 많이 일어나기도 하죠. 집착으로 인한 애인 간 다툼은 아주 많이 일어납니다. 강은교 시인은 이러한 집착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1연에서의 '떠나고 싶은 자를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를 잠들게 하라'는 이러한 메세지를 담은 표현이죠.

 

뒤이어 2~3연에서는 사랑의 자세, '침묵'이 나옵니다. 상대를 구속하고 집착하지 말기 바라며, 남은 시간은 '침묵'하라고 합니다. 3연에서는 '꽃, 하늘, 무덤'에 대해 서둘지 말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집착하고 조급하게 만드는 어떤 대상입니다. 꽃은 아름다움, 하늘은 이상, 무덤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것들에 집착하지 마라는 표현은 '사랑에 대한 자세'를 말하는 상징적인 표현들입니다.

 

 

3. 반복적 표현과 명령조 말투를 통해 사랑에 대한 확실한 주장

이 시의 주요 연은 일정한 내용들이 반복됩니다. 4연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은 날개, 흐르지 않는 강물, 누워 있는 구름, 잠깨지 않는 별은 모두 무기력해 보이기까지 하는,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입니다. 아마도 사랑과 관련된, 고통 혹은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에서도 초연해져야 한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5연에서는 '쉽게~지 말고'의 반복을 통해서 '쉽게 다가가려 하지 말고, 인내하라'는 메시지를 말하고 있죠. 뒤이어 6연에서는 1연과 반복된 표현이 나옵니다. 역시 '실눈으로 볼 것' = 관조, 인내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7연, 사랑의 경지가 나옵니다. 가장 큰 하늘인 '진정한 사랑'은 바로 우리의 등 뒤에 있다고 합니다. 이는 사랑이 멀게 느껴지지만 그만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참으며 뒤를 바라보라는 주장이기도 하죠. 뒤를 바라보면 진정한 사랑이 보일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시는 마무리됩니다.

 

 

이렇게 이 시는, '반복적인 표현'과 '명령하듯 하는 말투', '상징적인 시어 사용'을 통해서 '사랑은 침묵과 관조의 자세로 기다릴 때 진정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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