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천양희
워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1. 슬픔의 문턱에서 시로 구원을 받았다
천양희 시인은 1942년,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난 그녀는 1965년, 박두진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정원의 한때>, <화음>, <아침>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후 인생에서의 큰 시련을 겪습니다. 결혼했지만 이혼을 하고, 5살 난 아이와도 멀어졌죠. 가족의 해체와 이별을 겪은 그녀의 몸은 폐결핵, 결핵, 심장병에 잇달아 걸렸고 그녀는 세상과 손을 끊었습니다. 이 당시인 1969년~1982년까지 그녀는 작품활동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녀를 구원한 것은 시였습니다. 그녀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시집 내기 전 죽은 듯이 살았어요. 첫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1983)이 나오고 나서 숨을 쉬기 시작했어요. 시가 나를 구원한 셈인데, 인생에서 가장 고마워하는 것이 부처님과 시예요. 힘이자 짐이고 괴로움이자 기쁨이에요. 쓸 땐 짐처럼 무겁고 괴롭지만 좋은 시 한 편 쓰면 힘이 생기고 기뻐요."
이처럼 시 덕분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은 그녀는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을 시작으로 <<사람 그리운 도시>>, <<하루치의 희망>>을 발표하면서 고통스럽지만 세상과 다시 손을 잡습니다. 이후에는 <<마음의 수수밭>>(1994) 등을 발표하면서 세상에서 겪은 고통, 좌절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죠. 그녀의 시는 가식이 없으며 많은 독자들에게 곧바로 다가와 울림을 줬습니다.
이 시 <밥>은 이러한 시인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본인이 겪었던 이야기를 직접 해 주는 듯합니다. 천양희 시인은 당시 세상에 좌절감을 느끼고 외로워하기만 했겠죠. 목숨이라는 것 자체만을 간신히 부여잡기 위해,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운 마음을 잊기 위해 위에 밥을 꾸역꾸역 씹어 삼켰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겪은 그녀가, 그녀처럼 시련을 겪고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작은 격려와 의지의 메시지를 주는 시, <밥>입니다.
2. 외롭고 권태롭고 슬픈 존재에게 하는 삶의 조언 한 가지
시는 6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크게 '너'의 상황 - '너'에 대한 조언으로 나뉘어져 있죠. 1~3행을 통해서 '너'의 상황이 드러납니다. 너는 외로움에 빠져 허한 마음 대신 위라도 채우기 위해 삶의 부지 수단으로서 밥을 삼키기만 합니다. 권태로움에 빠져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쥐 죽은 듯 자기만 합니다. 슬픔에 빠져서 울음만 가득합니다. 어떤 상황에 의해 좌절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모습입니다.
이런 너에게 시인은 한 마디를 써서 줍니다. 바로 5~6행이 그 말입니다. 시인은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으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궁지에 몰리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체념만을 하게 됩니다. 지금 '너'의 상황이 딱 그렇습니다. 외로움, 권태로움, 슬픔에 저항하지 않고 그것들을 체념한 듯한 모습입니다. 이런 너에게 시인은 '그런 궁지를 밥 씹듯이 삼켜서 먹고 넘어가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삶은 너가 꾸역꾸역 소화해 내야 하는, 그런 필연적인 존재다'라는 메시지를 같이 하고 있죠. 이를 통해 시인은 '삶은 너가 필연적으로 소화하여 너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그런 존재이다. 궁지에 몰리는 일은 살아가며 부지기수다. 그런 궁지에 몰린 마음을 일상에서 밥을 먹듯이 씹어 먹어라'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 개인적인 의견
이 시는 이렇게 '밥을 먹는 행위' = '인생의 장애물을 넘어가는 행위'로 비유하여 삶의 어려움이 닥치면 자연스럽게 헤쳐나가자는 의지를 주고 있습니다. 천양희 시인이 직접 어려움에 좌절하고 체념하다 그것을 극복했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밥처럼 씹고 소화시킬 수 있는 의지'라는 걸 잘 알고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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