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앉은 나무>, 김용택
나무는 정면이 없다.
바라보는 쪽이 정면이다.
나무는 경계가 없다.
자기에게 오는 것들을
다 받아들이며 넘나든다.
나무는 볼 때마다
완성되어 있고
볼 때마다 다르다.
새가 앉으면,
새가 앉은 나무가 되고
바림이 불면 바람 부는 나무가 된다
나무는 어린 손자를 안은
할아버지처럼 인자하다.
1. 섬진강 선생님, 김용택 시인
김용택 시인 하면 '섬진강 선생님'으로 알려져있죠.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그는 순창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습니다. 2008년 덕치초등학교에서 퇴임할 때까지 교사로 근무한 그의 시 활동은 1982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때 발표한 시가 <섬진강>입니다.
그의 시는 대부분 섬진강을 배경으로 합니다. 김용택 시인 본인이 섬진강에 대해서 "나의 모든 글은 거기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고 끝이 날 것을 믿으며, 내 시는 이 작은 마을에 있는 한 그루 나무이기를 원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섬진강은 김용택 시인의 시상을 떠올리게 한 소중한 공간이죠. 1985년에 시집 <<섬진강>>을 발간한 이후 <<꽃산 가는 길>>(1988), <<누이야 날 저문다>>(1988), <<그대, 거침없는 사랑>>(1993), <<나무>>(2002) 등 섬진강과 자연을 소재로 한 시들 /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시들 / 현대인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주는 시들 등 다양한 시를 써왔습니다.
그의 시는 어떠한 이념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항상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를 써서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켜줬죠.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이라 평받기도 하는 그의 시는 한편으로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자세에 대해 어떠한 가르침을 주기도 합니다. 시가 가진 가장 큰 역할 중 하나인 깨달음의 역할을 그의 많은 시들도 맡았습니다.
오늘 보는 이 시 <새가 앉은 나무>는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에 대한 김용택 시인의 분명한 메시지가 담긴 시입니다. 그것이 뭔지를 살펴보죠.
2. 나무는 정면이 없다
이 시는 13행의 비교적 짧은 시입니다. '나무'라는 자연물을 소재로 하여 쓴 시죠. 김용택 시인만의 깨끗한 언어로 쓰인 이 시의 시작은 '나무는 정면이 없다'입니다.
정면이 없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실제로 나무의 앞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2행에서 나오듯이 바로 바라보는 모든 쪽이 정면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무는 어느 방향에서 봐도 모두 정면이 됩니다. 특정한 하나의 답만이 있지 않고 보는 모든 부분이 정답이 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나무의 속성, 즉 어떠한 방면에서 봐도 경계가 없고 모두가 답이 될 수 있는 '포용력'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이념적 주장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싸웁니다. 현대 정치판만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도 그런 모습이 종종 나타납니다. 내 주장과 다르면 포용하지 않고 서로가 정면이 아니라고, 즉 문제에 대한 곧바른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하죠. 이런 모습들을 보며 시인은 '나무는 어떤 방향에서 봐도 완전한 나무이듯이, 우리의 정답은 하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말하는 바가 정답일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자'라는 메시지를 주고자 한 거일 겁니다.
3. 새가 앉으면 새가 앉은 나무
4행에서는 나무의 포용력을 더 깊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자기에게 오는 것들을 다 받아들입니다. 나무 혼자 있는 모습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무엇인가가 오면 그걸 받아들여 또다른 완성된 나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새가 앉으면 새가 앉는 나무가 됩니다. 또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나무가 됩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나무의 포용력'을 강조하는 표현들이죠. 나무는 특정한 무엇인가를 배척하거나 더 환영하지 않습니다. 모두를 똑같이 맞이하고, 융합하여 다른 모습을 탄생시킵니다. 그 모습들은 다 다르지만, 모두 '완성된 아름다운 나무'임은 분명하죠.
시인은 이러한 나무의 모습을 마지막행에서 '어린 손자를 안은 할아버지처럼 인자하다'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어떠한 행동을 하든 따뜻하게 포용하는 존재입니다. 말썽을 부려도, 울어도, 아파해도, 좋아해도 손자 그 자체를 끌어안습니다. 이러한 비유로 '어떠한 이념이나 주장을 중요시하지 않고 사람 그 자체를 존중하는 모습'을 강조하며, 시는 끝납니다.
♣ 개인적인 의견
이 시는 이렇게 자연물 '나무'를 소재로 하여, 분명한 '통합과 포용'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면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나무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형은 정면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내면은 나무처럼 모든 면이 답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김용택 시인은 최근 14번째 시집 <모두가 첫날처럼>을 출간하며,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나무의 포용력에 주목하자'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무는 사시사철 따뜻하게 모두를 맞이합니다. 그러한 나무가 많으면 자연이 활기를 띠고 더 좋은 환경이 마련되죠. 우리도 나무와 같은 존재가 된다면 좀 더 활기를 띠고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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