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도종환
혼자 걷는 길 위에 비가 내린다
구름이 끼인 만큼 비는 내리리라
당신을 향해 젖으며 가는 나의 길을 생각한다
나도 당신을 사랑한 만큼
시를 쓰게 되리라
당신으로 인해 사랑을 얻었고
당신으로 인해 삶을 잃었으나
영원한 사랑만이
우리들의 영원한 삶을
되찾게 할 것이다
혼자 가는 길 위에 비가 내리나
나는 외롭지 않고
다만 젖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먼 거리에 서 있어도
나는 당신을 가리는 우산이고 싶다
언제나 하나의 웃나 속에 있고 싶다
1. 도종환 시인의 애뜻한 사랑
도종화 시인은 여러 주제를 담은 시를 썼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주제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에는 도종환 시인만의 아픈 감정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도종환 시인은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한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1986년에 출간한 <<접시꽃 당신>>에 수록된 시들 중에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담은 시들이 많습니다. 도종환 시인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이 시 중 하나인 <접시꽃 당신>이 대표적이죠.
이러한 도종환 시인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이 시를 읽으면 조금은 먹먹한 감정이 듭니다. 비가 많이 오는 따뜻한 봄날에 더 읽고 싶은 시, <우산>입니다.
2. 아내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 담겨 있다
이 시는 <<다시 피는 꽃>>(2001)에 수록된 시입니다. 도종환 시인이 아내를 사별한 시기와는 어느 정도 시간적 차이가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은 영영 가슴 속에 남아있을 테죠.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고 사랑을 위해서라도 결코 지울 수 없는 그 기억을 가지고 도종환 시인은 이 시를 썼을 것 같습니다.
도종환 시인이 이 시를 쓰며 아내를 떠올렸음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6~7행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당신으로 인해 사랑을 얻었고, 당신으로 인해 삶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평범하게 현재 같이 사랑하고 있는 사이라면 '삶을 잃었다'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 표현은 아마 도종환 시인 본인의 전부였던 아내를 잃었고, 그 슬픔이 매우 컸기에 사랑하는 당신의 죽음으로 인하여 나의 삶도 잃었다라는 감정을 담고 썼을 것입니다. 그만큼 아내를 사랑했고, 아내는 사랑이자 나의 삶 자체였음을 말하고 있죠.
3. 화자는 왜 비를 맞으며 가고 있을까
다시 1행으로 돌아가서 감상해 보죠. 화자는 비를 맞고 있습니다. 구름이 끼인 만큼 비는 내립니다. 특이한 점은 3행입니다. '당신을 향해 젖으며 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크게 2가지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1. 비(=시련)가 세게 와도 나는 당신을 향해 내 길을 가겠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2. 사랑하는 당신을 향해 갈수록 내 마음은 당신으로 흠뻑 젖는다. 이것이 마치 내가 비에 젖는 것과 같다.
여기서의 비는 단순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1이나 2로 해석해도 이 비는 당신을 향한 화자의 사랑과 당신과 함께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더 강조해 주는 기능을 하죠. 일반적으로 이런 빗속을 걸으면 외로움을 느끼겠지만, 화자는 12~13행에서 '외롭지 않고 젖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비를 맞는 상황이 부정적인 상황만은 아님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4. 나는 당신을 가리는 우산이고 싶다
마지막 행은 화자의 소망이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우산은 비나 눈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해 줍니다. 이런 우산이 되고 싶다는 것은,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내 한 몸을 희생할 것이며 당신을 영원히 지켜줄 것이라는 화자의 의지가 보이는 소망입니다. 또한 마지막 행에서 화자는 언제나 하나의 우산 속에 있고 싶다고 했습니다. 비록 우산이 작아 서로 몸이 젖더라도, 하나의 품에 영원히 안고 있어, 주위의 모든 시련을 극복해 나갈 것이라는 강한 의지와 사랑의 표현이죠. 이러한 표현들을 통해 '우산'이라는 존재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의지,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게 해 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됩니다.
♣ 개인적인 의견
도종환 시인의 사별에 대한 아픔, 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아픔이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사랑과 그리움의 감정을 증폭시킵니다. 또한 그 이별이 질병, 사고 등으로 인한 것이라면 '왜 내가 보살피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지' 하는 죄책감이 들 것이죠. 아마 도종환 시인이 '당신을 가리는 우산이 되고 싶다'라고 말한 것에는, 이러한 아픔으로 당신을 보냈기에, 죽어서도 평생 당신을 지키겠노라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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