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에>, 나태주
말없이 바라
보아주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합니다
때때로 옆에와
서 주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따뜻합니다
산에 들에 하이얀 무찔레꽃
울타리에 넝클장미
어우러져 피어나는 유월에
그대 눈길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나는
황홀합니다
그대 생각 가슴속에
안개되어 피어오름 만으로도
나는 이렇게 가득합니다
1. 풀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태주 시인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읽고 길을 걸어보세요. 그전까지 관심 두지 않았던 작은 식물들과 들꽃에 눈이 갑니다. 들꽃에 가까이 가면 작지만 또렷한 꽃망울을 가지고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자태를 볼 수 있죠.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것은, 쉬우면서 강렬하기 때문도 있지만 그만큼 지나치기 쉬운 작은 존재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이 돋보이며 그로 인해 느낀 감정을 짧은 문장 안에 아주 섬세하게 다루는 시인의 세련미 덕분이라고 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녹음이 무성해지는 5월 말입니다. 이런 날에 읽기 좋은 시, <유월에>를 감상해 보죠.
*나태주 시인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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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월은 모든 식물이 무성하고 조화로워지는 계절
1년의 절반 6월. 6월은 식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져서 그 절정을 이루는 시기입니다. 장마가 오기 전에 뿌리를 한껏 깊게 내리고, 잎사귀를 무성하게 키워내죠. 또한 더위를 맞이하여 장미와 같은 꽃들이 활짝 피어 길을 보면 푸르름 속에 빨갛고 노랗고 하얀 꽃들이 무성하게 피어있는 모습이 참으로 풍성한 꽃다발 같습니다.
나태주 시인은 이런 6월의 자연풍경을 보고 사랑시를 지었습니다. 왜 하필 6월이었을까요? 자연이 이렇게 무성해지듯, 나의 당신에 대한 마음도 절정을 이루어 내 마음을 전부 차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3. 당신을 바라보고 있어도 행복하고, 따뜻하고, 황홀하다
화자에게 당신이라는 존재는 6월에 나 주위에 도래한 무성한 자연과 같아 보입니다. 무성한 자연 속에 있으면 자연이 나를 뒤덮어 나도 자연의 일부가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죠. 산속에 있으면 그러한 감정을 많이 느끼잖아요. 화자는 이러한 감정을 당신의 옆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이 마음에 들어와 나를 물들이고, 황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1연에서는 당신이 말없이 바라봐도 행복하다고 합니다. 2연에서는 옆에 와 서기만 해도 따뜻하다고 합니다. 4연에서는 눈길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며, 5연에서는 당신 생각만 해도 가득하다고 합니다. 이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나 자체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뜻하죠. 아마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만을 생각하며, 그 사람 덕분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표현한 연 5개를 제외하면 남은 것은 3연입니다. 이 3연에서 6월을 선택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6월은 무찔레꽃과 덩굴장미가 어우러져 피어나는 계절이라고 합니다. 이 둘만 다루었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6월은 자연의 무성함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죠. 자연의 무성함 = 사랑의 무성함으로 표현하고자 6월을 선택했을 것 같습니다.
♣ 개인적인 의견
시인은 '육월에'가 아니라 <유월에>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발음되는 대로 제목을 지은 것이지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발음을 제목으로 선정함으로써, 사랑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자연의 부드러움이 제목에서도 드러납니다. 유월은 그만큼 자연과 사랑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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