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오늘의 시는 천상병 시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이며, 삶의 마지막 순간에 미소를 지으며 떠올릴 수 있는 시기도 한 <귀천>입니다. 천상병 시인은 어려서부터 가난, 무직, 방탕 등으로 많은 고생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시를 쓰는 내내 천상병 시인을 따라다닌 '가난'이라는 단어는, 시에서 좌절감과 씁쓸함, 인생의 고달픔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천상병 시인은 그런 가난을 부정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난하지만 그 또한 내 삶의 모습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가난과 삶을 초월한 초연적인 자세를 같이 표하기도 했죠.
그의 대표적인 시인 <나의 가난은>에서도 이러한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같이 담겨 있습니다. 돈이 없음으로 인한 고독함을 느끼면서도 그런 가난한 삶이 내 인생이고, 나름대로 받아들이며 살아왔음을 인정하는 초연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죠.
https://c-knowledge.tistory.com/28
천상병, <나의 가난은> (시 수집 5)
,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c-knowledge.tistory.com
오늘 감상하고 있는 <귀천>은 이러한 천상병 시인의 '삶과 물질을 초월한 자세'를 잘 보여주는 시입니다.
1.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의 반복
<귀천>은 1970년 <<창작과 비평>> 6월호에 발표된 시입니다. 총 3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지막 연은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죠. 시의 가장 큰 특징은 각 연의 시작이 반복구조라는 것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는 읊조리는 듯한 말은 '죽음에 대한 초연한 자세'를 의미합니다. 여기서의 하늘은 죽음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화자의 자세가 우울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화자의 자세를 쭉 보면, 죽음을 우울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삶에 대한 욕망과 집착, 괴로움을 초월하여 죽음도 우리 인간이 겪어야 할 필연적인 일생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1연에서는 이슬과 함께 손을 잡고 하늘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2연에서는 노을빛과 단 둘이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가 하늘로 돌아갈 때 같이 갈 것은 이슬과 노을빛뿐입니다. 이슬과 노을빛은 어떤 물질적인 것이 아닌 자연의 순환 그 자체입니다. 이슬은 아침이 지나 낮이 되면 사라지고, 노을빛은 밤이 되면 사라집니다. 이와 동일하게 화자 역시 죽음을 통해 이 세상에서 미련 없이 사라집니다. 이를 통해서 화자는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어떠한 미련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죠.
또한 이슬과 노을빛은 다음날이 되면 다시 반복하여 생깁니다. 이는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일맥상통하죠. 이를 통해 화자는 영원한 삶도, 영원한 죽음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연에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이 손짓하면 다시 올라가는 것은 그만큼 삶과 죽음을 인간의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죠.
2.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 세상은 아름다웠다
이 시의 절정은 3연입니다. 화자는 3연에서 이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의 굴레에서 괴롭게 살아오던 현실의 시인이 느끼던 감정과는 상반될 수 있죠. 이러한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 시인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가난이 나의 삶을 아름답지 않게 만들 수는 없다. 나는 나 그 자체로 아름다웠고, 이 세상은 세상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라는 초월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은 1연, 2연과 유사하게 이 세상에 어떠한 미련이나 집착, 물욕이 없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우리의 삶을 '소풍'이라고 묘사하여, 이 세상에서의 삶을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즉 이 시는 '우리는 잠시 내려와 살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세상, 욕심과 집착에 괴로워하지 말고 세상과 나 자체를 즐기며 살다 가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죠. 이 시가 사람들의 가슴에 깊게 남아 있는 것은, 이러한 메시지를 통해 우리 역시 좀 더 넓고 편안한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일 겁니다.
♣ 개인적인 의견
인천의 강화도에 가면 건평포구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천상병 시인이 <귀천>의 시상을 떠올린 곳이라고 하는군요. 건평포구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상병 시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나의 가난은>의 마지막 말처럼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까요.
*함께 읽으면 좋은 시
https://c-knowledge.tistory.com/66
천상병, <5월의 신록> (시 수집 32)
, 천상병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 두 살 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
c-knowledge.tistory.com
'모아모아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곽재구, <사평역에서> (시 수집 54) (1) | 2023.05.28 |
---|---|
도종환, <우산> (시 수집 53) (1) | 2023.05.27 |
조지훈, <산상의 노래> (시 수집 51) (0) | 2023.05.24 |
나태주, <유월에> (시 수집 50) (0) | 2023.05.24 |
신경림, <농무> (시 수집 49) (1) | 2023.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