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의 노래>, 조지훈
높으디 높은 산마루
낡은 고목에 못박힌듯 기대여
내 홀로 긴 밤을
무엇을 간구하며 울어왔는가
아아 이 아침
시들은 핏줄의 구비구비로
싸늘한 가슴의 한복판까지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
이제 눈 감아도 오히려
꽃다운 하늘이거니
내 영혼의 촛불로
어둠 속에 나래 떨던 샛별아 숨으라
환히 트이는 이마 우
떠오르는 햇살은
시월 상달의 꿈과 같고나
메마른 입술에 피가 돌아
오래 잊었던 피리의
가락을 더듬노니
새들 즐거이 구름 끝에 노래 부르고
사슴과 토끼는
한 포기 향기로운 싸릿순을 사양하라
여기 높으디 높은 산마루
맑은 바람 속에 옷자락을 날리며
내 홀로 서서
무엇을 기다리며 노래하는가
1.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현실을 한국적 정서로 노래한 시인, 조지훈
조지훈 시인은 일제강점기에 맞써 민족성을 유지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지식인으로서 우리나라를 위한 고민, 좌절해야 했던 순간들, 그리고 마음 한켠에서 바라고 있는 희망이 시 안에서 소용돌이치며 아름다운 시들이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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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낙화> (시 수집 18)
,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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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승무> (시 수집 31)
, 조지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항촉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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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완화삼> (시 수집 44)
,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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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들은 대부분 광복 전,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고뇌하고 좌절하던 조지훈 시인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이와 달리 오늘 감상할 <산상의 노래>는 그 분위기가 조금 더 희망에 가깝습니다. 이 시는 1945년에 발표된 시입니다. 바로 광복이 있던 해죠. 맞습니다. 이 시는 1945년에 발간된 <<해방기념시집>>에 실린 시로, 해방의 기쁨과 희망, 그리고 새로운 과제에 대한 고민을 다룬 시입니다. 위의 시들이 어둡고 좌절감과 쓸쓸함이 주된 감성이라면 이 <산상의 노래>는 희망 속에서의 고뇌가 돋보이는 작품이죠.
2. 해방을 기원하던 과거-해방의 순간-해방 후의 미래에 대한 고민
이 시는 총 7연 25행의 시입니다. 시의 내용은 요약하면 '염원하던 광복을 맞이한 기쁨, 그리고 광복 후 민족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한 고민'이 주제입니다. 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광복 전의 염원-광복의 기쁨-광복 후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나뉩니다. 조지훈 시인은 이 세 흐름을 하나의 시에 담음으로써, 당시 우리 민족들의 기쁨을 표현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진취적인 메시지까지 말했죠.
1연과 7연은 같은 배경에서 대조되는 상황을 이룹니다. 시의 시작인 1연은 시련 속에서 광복을 염원한 화자의 마음을 대변하죠. 낡은 고목은 생명력을 잃은 존재이며 긴 밤은 암울한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자는 광복을 간구해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아침이 옵니다. 여기서의 아침은 광복의 아침입니다. 민족은 피를 보고 여기저기 상처를 받아 시들었지만, 그 상처를 메꾸는 광복의 종소리가 마침내 찾아옵니다. 1연의 어둠은 2연에서 아침으로 환하게 전환되고, 뒤이어 3연에서 꽃다운 하늘로 전환되면서 분위기는 단번에 바뀝니다. 여기서의 꽃다운 하늘, 광복이 찾아온 현실입니다.
당시에 광복을 맞이한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만세를 연이어 외쳤습니다. 이는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조국의 희망이 찾아왔다는 기쁨과 함께, 조국과 함께 나라는 개인의 삶도 다시 활기를 띨 것이라는 희망의 목소리였습니다. 시에서도 이러한 희망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바로 4연의 '꿈'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로 말이죠.
조지훈 시인은 일제강점기 지식인이었기에 자신이 진정으로 갈구하던 시 창작에 제약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시인에게 광복은 시 창작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었죠. 5연에서는 이러한 자유를 만끽한 시인의 기쁨이 '오래 잊었던 피리의 가락을 더듬노니'라는 표현에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의 피리의 가락은 아마 조지훈 시인에게는 '시의 노래'였을 겁니다.
이렇게 1연에서 6연에 걸쳐서, 광복을 염원하는 마음과 광복 후의 기쁨을 노래했다면 마지막 7연에서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말하며 시는 끝납니다. 7연은 1연과 같은 배경이지만 그 이미지는 매우 대비됩니다. 높디 높은 산마루의 낡은 고목에 힘없이 기대어 있던 1연에서, 맑은 바람 속에 옷자락을 날리며 두 다리로 직접 서 있는 7연의 모습으로 변화된 것은 그만큼 화자의 가슴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의지가 솟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서는 '무엇을 기다리며 노래하는가'라는 말을 통해서 광복이 끝이 아니고, 그 이후에는 무엇을 바라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지훈 시인은 광복의 기쁨을 노래하면서도 지식인의 시각에서 광복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소망과 미래를 노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죠. 결과적으로 이 말은 당시 우리가 귀담아야 했던 말이었습니다. 광복 후 대한민국은 분단되어 더더욱 큰 혼란에 빠졌고, 뒤이어 터진 6.25는 다시 한반도를 절망의 땅으로 물들였습니다. 조지훈 시인은 이러한 미래를 걱정하면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기쁨은 기쁨대로 느끼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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