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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문태준, <가재미> (시 수집 73)

by 알쓸수집가 202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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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1.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은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4년 계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시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후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등 시집을 왕성히 내며 활동하고 있죠. 한국 서정시인의 계보를 잇는 시인이라는 그의 시는 '대자연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특유의 서정시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태준 시인의 가장 대표적인 시집은 2006년에 나온 <<가재미>>입니다. 그중에서도 표제시로 사용된 <가재미>를 만나보죠. 이 <가재미>는 죽음을 목전에 둔 한 여인과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결합하여 도처한 죽음과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마지막 사랑을 건네는 주위의 시선이 어우러진, 시입니다.

 

 

2. 가재미처럼 누워있는 그녀

이 시는 인간과 인간의 교감,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것인 죽음에 도달했을 때의 순수한 감정을 다룬 시입니다. 시의 첫 행은 암 투병 중인 어떤 여인이 등장합니다. '김천 의료원 6인실 302호'에 누워있는 그녀, 이런 구체적인 배경은 시로 하여금 현실감을 주며, 동시에 삶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맞이하고 있는 그녀의 고달픈 모습을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줍니다.

 

그녀는 가재미처럼 누워있습니다. 가재미(가자미)는 몸체가 얇은 생선입니다. 얇아서 위에서 보면 비실거려 보이는 몸체를 가지고 있으며, 좌우로 몸을 가눌 수도 없습니다. 이는 암 투병 중인 그녀의 모습과 동일시됩니다. 암으로 인해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는, 밥을 넘기지도 못하는 와중 항셍제 등의 치료로 인해 몸은 말라 간다고 합니다. 또한 온몸에 암이 퍼지면 한 몸을 좌우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죠. 그저 기침에 고개를 흔들기만 하고, 가재미처럼 치우쳐진 눈동자를 움직이기만 할 뿐입니다.

 

이런 그녀를 보며 나는 3행에서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죽음을 앞둔 그녀에 대한 교감과 동시에 나 역시도 가재미가 되어 그녀를 위로한다는 애정이 깃든 행동입니다. 또한 화자는 6행에서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그녀의 과거입니다.

 

 

3. 과거의 그녀는 생기가 넘쳤다

과거의 그녀는 생기가 넘쳤습니다. 가재미도 아니었죠. 좌우를 흔들며 물속을 위아래로 마음껏 돌아다녔을 것입니다. 비록 그녀는 흙담조차 없었고 국수를 삶아 먹는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그녀의 오솔길 즉 인생은 한때 대낮처럼 화창했고, 신선한 뻐꾸기 소리처럼 활기가 넘쳤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렇지 않습니다. 등뼈는 눈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구부정해지고,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집니다. 이렇게 과거의 그녀를 회상하고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냄으로써, 화자는 그녀가 처한 삶의 마지막 단계, 죽음을 더욱더 강렬한 이미지로 그려냅니다. 희망이 있었을 수록 비극이 더 도드라지는 법이지요.

 

이제 그녀는 죽음 바깥의 세상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통 삶의 바깥 세상, 즉 죽음을 보고 살지 않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죠. 하지만 우리와 달리 죽음을 눈앞에 둔 그녀에게는 이제 '죽음 바깥의 삶의 세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를 시인은 다시 가재미의 눈에 비유합니다. 한쪽 눈이 쏠려 있다는 것, 그것은 눈을 돌릴 힘 즉 다른 것을 볼 힘이 없음을 의미하죠.

 

 

4. 죽음을 앞둔 그녀를 위해 나는 같이 눕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자는 마지막 사랑을 표현합니다. 바로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 것이죠. 삶의 마지막에 다다른 그녀를 위로하는 나의 작은 동작이면서,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입니다. 이를 통해서 나와 그녀는 잠시나마 같은 인간으로의 모습을 취합니다. 그녀 역시 나에게 '물을 적셔 줌으로써' 나름의 애정 표현을 하는 것으로 시는 끝마칩니다.

 

 

 

♣ 개인적인 의견

이 시의 그녀는 누구일까요. <<가재미>>에는 늙은 어머니에 대한 시들도 몇 개 등장합니다. 그런 것과 연관지어 보면, 이 시의 그녀는 '어머니'일 수도 있겠습니다. 시에서 그녀가 점점 야위어가는 과정은 마치 사람이 늙어가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등뼈가 구부정해지고 다리가 멀어지고 가늘어지는 것은 노화의 과정 중 하나기 때문이죠.

 

만약 그녀가 어머니라면, 어머니 옆에 가재미가 되어 눕는다는 것은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누워 잠을 자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주는 그런 의미이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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