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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최승자, <어느 여인의 종말> (시 수집 76)

by 알쓸수집가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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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인의 종말>, 최승자

 

어느 빛 밝은 아침

잠실 독신자 아파트 방에

한 여자의 시체가 누워 있다

 

식은 몸뚱어리로부터

한때 뜨거웠던 숨결

한때 빛났던 꿈결이

꾸륵꾸륵 새어 나오고

세상을 향한 영원한 부끄러움,

그녀의 맨발 한 짝이

이불 밖으로 미안한 듯 빠져나와 있다

산발한 머리카락을오부터

희푸른 희푸른 연기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일찌기 절망의 골수분자였던

그녀의 뇌세포가 방바닥에

흥건하게 쏟아져 나와

구더기처럼 꿈틀거린다

 


 

 

 

1. 죽음을 통해 삶을 조명한 시인, 최승자

이전 2021년, 최승자 시인이 1989년에 출간된 산문집을 재출간했다는 소식에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산문집은 곧 서점 베스트셀러를 찍었으며, 문단의 많은 주목을 받았죠. 1980년대,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한 시를 써서 대중의 주목을 받았으며, 그 이후에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시작 활동을 멈췄던 그녀. 그랬기에 10년 이후의 시 재개 활동과 산문집 재출간 등, 하나하나의 문단 활동이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바로 최승자 시인입니다.

 

최승자 시인은 1952년 충남 연기 출생입니다. 1979년 <<문학과 지성>>에 <이 시대의 사랑> 등을 발표하며 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981년에 첫 시집인 <<이 시대의 사랑>>을 출간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집입니다. 이후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를 출간하며 시 활동을 이어오던 그녀는 1999년에 <<연인들>>을 낸 후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병원 치료로 인하여 시작 활동을 멈췄던 그녀는 이후 11년 만에 새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을 발간하며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녀의 시는 '죽음'으로 대표할 수 있습니다. 삶에 대한 절망, 죽음의 여과없는 묘사는 그의 초기 시집 <<이 시대의 사랑>>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죠.

 

그러나 이는 절망과 죽음 그 자체에 빠져들기보다는, 이러한 비극적인 소재를 통해서 인간이 가진 강한 삶의 의지를 드러내고자 함에 의미가 있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비극을 보는 이에 따라서는 불쾌할 정도로 여과 없이 표현함으로써, 우리 시대가 파괴한 개인의 푸르른 생명을 문제삼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말하고 있죠.

 

필요에 의한 절망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러한 그녀의 시를 읽으면, 머릿속에 강한 충격이 들어옵니다. 시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과 찜찜하면서도 다음 장을 넘으며 시에 더 깊이 빠지게 만드는 매력, 그것이 최승자 시인의 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최승자 시인의 첫 시집에 수록된 시, <어느 여인의 종말>을 감상해 보죠.

 

 

 

 

 

2. 어느 여인의 죽음을 소재로 하여 파괴된 삶의 모습을 그리다

이 시는 크게 2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연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나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여인은 독신자입니다. '고독사'가 떠오르는 모습이죠.

 

당대 급속한 경제발전은 개인의 삶을 나몰라라 하는 경향이 강했고, 이러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당시의 많은 노인들은 기본적인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고독사' 문제는 최근에는 사회 문제로 수면에 떠오르기까지 했죠. 당시에는 사회문제라고 인식되지 못했던 이를 최승자 시인은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잠실, 언뜻 보면 꽤나 잘 사는 동네라고 볼 수도 있지만, 결국 이 여인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여인의 삶은 외롭기만 했을 것입니다.

 

 

3. 여인의 시체에서 나오는 것

2연은 시체 부패 과정을 묘사하는 듯합니다. 시체가 부패하면 부패액이 나오고, 구더기가 생기고 역한 냄새를 풍깁니다. 이 과정을 시인은 무엇인가가 새어나오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꿈결'입니다. 식은 몸에서 한때 뜨거웠던 꿈결이 나온다는 것은, '이 여인이 꿈꿔 왔던 소망,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의미합니다. 그 꿈결은 결국 차갑게 식어서, 천천히 아래로 스멀스멀 새어 나오게 됩니다. 이는 '여인의 삶이 비극으로 끝났음'을 의미하죠.

 

시인은 한쪽으로 튀어나온 시체의 맨발을 보며, 이를 부끄러움이라고 칭했습니다. 전체가 아니라 발만 빼꼼 내민 그 모습, 죽어서도 부끄러움만이 가득한 그 여인의 모습을 통해서 여인이 겪어야 했던 삶에 대한 회의감을 쥐어 줍니다.

 

 

3. 절망의 골수분자였던 그녀의 뇌세포

머리카락으로부터 나오는 희푸른 연기. 희푸르다는 이미지는 색을 잃어가는 느낌을 줍니다. 이를 통해서 앞에서의 꿈결처럼, 죽음을 맞이한 여인에게서 삶의 희망이 날아올라 소멸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녀의 뇌세포가 쏟아져 나옵니다. 뇌는 삶의 목표와 희망을 그리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고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뇌세포는 절망의 골수분자였습니다. 즉 당대의 사회에 의해서 절망만을 안고, 이에 잠식되어 일찍이 꿈꿔왔던 희망은 더이상 뇌에서 주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그렇기에 이 뇌세포는 '구더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고독사로 죽음을 맞이한 여인과 그 시체가 부패되어 가는 과정에 '삶이 송두리채 뽑히고, 절망만이 가득한, 삶이 삶 같지 않은 모습'을 투영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진정한 삶은 무엇인가, 우리는 시체와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개인적인 의견

죽음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저는 죽음 관련 서적을 종종 읽어 봅니다. 우리는 죽음에 왜 관심을 가질까요? 그것은 죽음이 두려워서일 때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죽음을 배움으로써 삶의 의미를 깨닫기 위함일 것입니다. 최승자 시인의 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죽음, 질병, 절망과 같은 내용을 최승자 시인은 여과 없이 거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해 시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읽으며 신선한 충격을 받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충격을 통해서 '생명력 있고 희망찬 우리의 삶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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