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듬히>, 정현종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1. 정현종 시인의 교감
우리 인간은 완벽한 존재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도 깊게 살펴보면 불안정한 모습을 가지고 있죠. 그것은 물질적인 것, 외적인 것뿐 아니라 내면의 무엇인가에도 해당합니다. 제아무리 멋진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오늘의 시는 인간, 나아가 생명이 가진 어쩔 수 없는 불완벽성을 바탕으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그런 교감의 존재라는 것을 잘 드러내는 정현종 시인의 시, <비스듬히>를 감상해 보죠.
* 정현종 시인이 더 궁금하다면
https://c-knowledge.tistory.com/115
정현종, <방문객> (시 수집 72)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c-knowledge.tistory.com
2. 비스듬한 존재
이 시는 2020년에 출간된 정현종 시인의 시선집 <<비스듬히>>의 표제시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방송인 김제동 씨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시 중 하나라며 소개한 적도 있죠. 시는 짧습니다. 크게 3연으로 나누어지며, '~요'의 어조를 1, 2연에서 사용하여 마치 친밀한 상담 선생님이 말해주는 느낌을 줍니다.
우리가 이 시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시의 제목인 '비스듬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스듬하다'는 것은 수평/수직이 아닌 기울어져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죠.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완벽한 수평이나 수직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수평/수직선부터가 완벽한 수평/수직의 상태도 아니죠.
수평/수직은 단지 이론으로만 존재합니다. 수학 공식과 같은 상태에서만 수평/수직이 존재하고 실제로 세상에 있는 물건들을 측정하면 그러기는 쉽지 않죠. 시인은 이러한 '비스듬하다'의 속성을 '생명의 속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죠.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고, 다른 무엇인가와 기대어 서로가 서로에게 지지를 해줘야 살아갈 수 있죠. 1연에서 다루고 있는 나무 역시, 공기라는 존재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생명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며 상호 공존하는 관계이다'라는 점을, 시인은 '기댄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3. 우리도 기대야 하는 존재입니다
2연에서는 이를 우리 인간에게 적용합니다. 우리 역시 기대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요새는 무엇인가에 기대지 않고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남들의 도움도 거절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모두의 삶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기도 하죠.
때로는 좋은 것에 기대기도, 나쁜 것에 기대기도 합니다. 그럴 때가 있죠? 좌절로 인해서 술과 담배에 기대어 사는 경우도 있고, 나쁜 무리들에 이끌려 안 좋은 시기를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기대는 것을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다는 기후 현상처럼 말한 것은 '날씨에서 맑음과 흐림이 모두 자연적인 현상이듯이, 우리 역시 흐릴 때도 있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일이다'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2연을 통해 시인은 '우리도 어떤 사물 혹은 사람에게 기대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리고 기대는 것에 따라 맑아질 때도, 흐릴 때도 있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듯합니다. 때로는 흐린 날도 필요합니다. 흐리면 잠시 쉬어가거나 다른 길을 찾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잖아요. 다만 날이 흐리면 우산을 쓰고 피해가 없도록 정비를 하죠.
우리는 흐림 그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흐려짐은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현상임을 인지하고, 그런 날씨에서 빠르게 빠져나오도록 인지하면 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 한 잔 하며 우리를 흐림에 담그는 것. 그것 자체는 잠시 어둠 속에서 쉬어가는 것처럼 필요합니다. 하지만 계속 술에 빠지면 안 되는 것이잖아요.
4. 우리는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3연은, 이러한 개개인의 기댐이 확장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비스듬히 기대기도 하지만, 또다른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불완벽한 존재인 인간이기에 가능한, 화합하고 공존하는 모습입니다. 이 마지막 연을 통해서 시인은 '우리 모두는 불완벽한 존재이니 기대는 것을 거부할 필요도 없으며,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대고 기댈 수 있게 해주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렇게 이 시는 '비스듬하다'라는 속성을 인간에 투영하여 불완벽함을 편하게 인정하고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자는 화합과 교감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불완벽한 존재이기에 아름다울 때가 있습니다. 이 시는 그러한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기 위한 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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