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 오세영
마지막으로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주소에 엔터 키를 치면
모니터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공간,
그 공간에도 비는 오는지
빗속의 너는 자꾸만 멀리 달아나는데
가냘픈 코드를 붙들고
덧없이 서핑을 반복한다.
세상은 거대한 월드 와이드 웹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서로 보이지 않는 올가미를 씌우며
인연을 확인한다.
오늘의 검색 항목은 '사랑'
자꾸만 자꾸만 달아나는 너를 좇아
윈도우를 열어 보지만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너의 빈
사이버 공간.
1. 인터넷의 지나친 삶의 침투에 대한 비판
이 시는 오세영 시인의 시집 <<봄은 전쟁처럼>>(2004)에 수록된 시입니다. 당시에 컴퓨터의 대중화, 여러 인기 게임의 등장으로 인하여 본격적으로 웹 시대가 열렸었죠. 사람들은 컴퓨터 세상에 열광했고, 웹 세계는 어느덧 현실 세계를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웹 세계가 또 하나의 세계로 인정받지만, 그만큼 이전부터 키워왔던 많은 문제들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죠.
어쩌면 오세영 시인은 이러한 선견지명을 가지고, 제대로 구축하지 않으면 이후에 큰 문제들이 도래할 것을 경고하기 위해 이 시를 쓴 것이 아닐까요. <사이버 공간>을 감상해 보죠.
*오세영 시인이 더 궁금하다면?
https://c-knowledge.tistory.com/45
오세영, <2월> (시 수집 14)
, 오세영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 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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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이버 공간의 세계
사이버 공간은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주소를 입력하여 들어갑니다. 30cm 안팍의 작은 모니터 화면에 그러면 등장하는, 갇혀 있지만 끝없이 넓은 세계죠. 우리는 그러한 사이버 세계에서 우리, 나아가 전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며 소통하려고 합니다. 당시부터 존재했던 여러 채팅 앱, 웹 브라우저 등을 이용해서 말이죠.
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의 소통에는 무엇이 문제가 있을까요? 그것은 진정한 관계를 맺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관계는 휘발성이 강하며,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기보다는 컴퓨터 코드상으로 만나는 것에 더 가깝죠. 물론 지금은 컴퓨터 세계 같지 않도록 여러 기능들이 발전해 이런 문제가 좀 덜해졌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문제들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습니다.
채팅을 통해서 사람의 온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도 온라인상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그런 현상. 시인은 이를 심각하게 보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일회성 인간관계를 '빗속의 너는 자꾸만 멀리 달아나는데'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인간관계를 조금이라도 유지하고, 몇 초 전 사라진 인간관계 대신 다른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는 '덧없이 서핑을 반복'합니다.
3. 보이지 않는 올가미
사이버 공간 세상은 거대한 월드 와이드 웹입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서로를 확인하는 방법은 검색하여 접속하는 것이죠. 지금도 상대의 sns에 접속하고 기록을 남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잖아요. 시인은 이를 '보이지 않은 올가미'라고 봤습니다. 여기서의 '올가미'라는 것은 부정적인 어감으로 다가옵니다. 올가미는 어떤 무엇인가를 포획할 때 사용하는 수단이니, 보이지 않은 올가미란 인터넷상에서 상대를 포획하기 위한 여러 수단이죠.
이러한 사이버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검색과 접속으로 해결됩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특별한 감정인 '사랑'마저도 말이죠. 하지만 '사랑'을 아무리 검색하여 접속해도 휘발성/일회성의 공간에서 사랑조차도 자꾸만 자꾸만 달아닙니다. 시인은 마지막에서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너의 빈 / 사이버 공간'이라는 표현을 통해, 사이버 공간의 비인간적인 관계, 진정한 인간관계 형성의 어려움을 비판하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개인적인 의견
사이버 공간의 문제는 1990년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시대가 지날 때마다 중심 논란은 달라지지만, 그 중심에는 '사이버 공간이 현실에서 온기를 맞대며 접촉하는 인간세계를 100% 대체할 수 있을까?'가 있죠. 여러 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똑같은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대단히 어렵고 무엇 하나로 특정지을 수는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시를 통해 알아야 할 점은 사이버 공간이 좋다, 나쁘다라는 점이 아닙니다. 사이버 공간의 문제점을 고치고, 좋은 점은 더 강화하여 사이버 공간과 현실 공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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