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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시 수집 107)

by 알쓸수집가 2023.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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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도종환

 

견우 직녀도 이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네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1. 사별한 아내에 대한 사랑이 <<접시꽃 당신>>이란 시집으로

도종환 시인의 시는 평이하고 쉬운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강한 울림을 주죠. 때로는 우리에게 힘을 주는 메시지를 담은 시를 쓰기도 하고, 때로는 채찍질로 각성해 주는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도종환 시인 하면 '사별한 아내에 대한 사랑시'를 쓴 분으로 유명하죠. 그 유명한 <<접시꽃 당신>>, 도종환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자 암으로 사별한 아내에 대한 사랑을 투박하면서도 진솔한 시어로 써 내려간 시집입니다.

 

이 시집에 속한 시중 하나,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는 사별한 아내를 직녀, 시인 본인을 견우로 투영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입니다. 직녀와 견우조차도 만나는 칠석날, 아내를 묻은 화자의 심정을 한 번 깊이 들여다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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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견우와 직녀도 만나는 칠석날에 아내를 떠나보낸 화자

시에서는 견우와 직녀가 등장합니다. 견우와 직녀는 슬프고도 애뜻한 사랑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설화이죠. 둘은 1년에 딱 한 번, 칠석날에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의 화자는 이 날, 아내를 떠나보냈습니다. 

 

3행에서 등장하는 안개꽃. 안개꽃의 꽃말 중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안개꽃은 장미와 묶어서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라는 아름다운 꽃말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이라는 슬픈 결말을 담고 있는 꽃이죠. 이 안개꽃을 땅에 묻으며, 화자는 아내를 떠나보냅니다.

 

뒤이어 화자는 떠나보낸 아내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힙니다. 4행에서 살아서의 삶에 대한 모습이 나오는데, 옷 한 벌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어서야 수의 한 벌을 입혔다는 말에서 '가난했던 삶'을 알 수 있죠. 죽어서야 옷 한 벌을 해 입히는 화자의 현실, 견우와 직녀도 만나는 칠석날이라는 시간이 맞물려 화자의 비극은 더더욱 심화됩니다.

 

 

3. 견우와 직녀처럼 다시 만날 날이 올 것이뢰다

화자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아내는 참으로 소박한 사람이었나 봅니다. 손수 베틀로 옷가지를 짜며 살아왔으니까요. 그 옷가지를 이웃에 나눠주는 화자 역시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심성의 아내를 닮아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떠난 아내의 빈자리는 공허할 수밖에요. 

 

화자는 이렇게 이별을 겪고 나서야 견우와 직녀가 떨어진 거리, 1년이라는 시간이 참으로 긴 것임을 깨닫습니다. 은하의 동서쪽 서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라는 점은, 화자와 아내의 거리인 이승과 저승의 거리를 의미하죠. 

 

그렇기에 화자가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때는, 1년도 아닌 화자도 바람이 될 때입니다. 즉, 화자가 죽어 자연으로 돌아갈 때를 의미하죠. 하지만 이렇게 되어서라도 화자는 아내를 만날 것임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화자는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라는 말을 통해서 다시 삶의 의지를 다집니다.

 

사람은 죽어서도 연인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떠나죠. 아내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화자가 슬퍼하다가 비극적인 삶을 맞이하는 것은 죽은 아내의 입장에서도 슬픈 결말이겠죠. 이를 생각하며 화자는 삶의 의지를 다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행, 다시 한번 화자는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이 있음을 상기하며, 시는 마무리됩니다.

 

 

이렇게 이 시는 도종환 시인이 사별한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꾹꾹 담아 쓴 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별했을 때의 감정이란, 보통의 이별과는 다르죠. 그렇기에 이러한 이별을 우리는 특별히 '사별'이라는 말로 다르게 표현하기까지 합니다. 얼마나 슬픈 감정일까요. 게다가 칠석날, 견우와 직녀도 만난다는 그 날에 아내를 땅에 묻은 화자의 상황은, 그 비극을 더더욱 크게 느끼게 합니다. 

 

 

♣ 개인적인 감상

화자가 아내를 묻은 곳은 '옥수수밭' 옆입니다. 왜 옥수수밭이어야 했을까요. 일단 옥수수는 소박한 서민음식입니다. 화자와 아내를 대변하기에 좋은 투박한 식물이죠. 또한, 사람과 가장 비슷한 높이로 자라는 식물이기도 하죠. 화자는 그 옥수수밭에서 이듬해 자신 높이만큼 자란 옥수수를 보며, 아내를 떠올리려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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