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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박노해, <동그란 길로 가다> (시 수집 82)

by 알쓸수집가 2023.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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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길로 가다>, 박노해

 

누구도 산정에 오래 서 있을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환희의 날들은 짧다

고난의 날들도 짧다

 

돌아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힘든 때도 순간인 것을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진실된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1. 노동시인 박노해, 굳센 신념을 믿으라 말한다

박노해 시인은 '노동자의 시'를 써온 시인입니다. 그의 시에는 '현실의 많은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언젠가 우리 모두는 일어날 것이다'라는 강인한 의지가 줄곧 담겨 있습니다.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에 관심을 가지고 시를 써온 그는 이제 노동자뿐 아니라 핍박받고, 외롭고, 막막한 길에 맞닿은 모든 작은 존재들 모두를 위해 굳센 힘을 쥐어 주려 합니다

 

*박노해 시인이 더 궁금하다면?

https://c-knowledge.tistory.com/106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시 수집 66)

, 박노해 그냥 걸어라 첫 걸음마 하는 아이처럼 그냥 걸어라 상처도 두려움도 모르는 아이처럼 그냥 걸어라 금기도 허락도 모르는 아이처럼 걷다 넘어지면 울고 울다 일어나 다시 걸어라 걸어오

c-knowledge.tistory.com

 

 

이 시 <동그란 길로 가다>는 우리에게 '꺾이지 않는 의지'를 심어주는, 절대 꺾이지 않는 강인한 언어로 쓰인 시입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뜨겁게 달군 우리의 문구 '중꺾마', 이 시를 읽으면 그 정신이 생각나는군요.

 

 

2. 반복과 대구를 통하여 일관된 흐름을 유지

시는 총 6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반복과 대구입니다. '없다', '짧다', '잃지 마라'라는 종결 어미의 반복을 통해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시련이 있으면 기쁨이 있다. 그러니 우리의 길을 곧게 나아가자'라는 강인한 의지를 반복하여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로 끝내는 딱 잘라 말하는 듯한 문구를 통해서 우리의 등을 힘차게 두들겨 줍니다.

 

또한 1, 3, 4연에서는 '긍정적인 것이 있으면 부정적인 것이 오고, 부정적인 것이 있으면 긍정적인 것이 온다'라는 내용을 대구를 통해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산 정상골짜기, 절정최악, 환희고난은 서로 반대되는 소재이죠. 시인은 이 둘이 무작정 대비되는 존재라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씩 찾아오는 것이라는 걸 대구의 형태로 말하고 있습니다.

 

정상에 올랐으면 우리는 다시 내려와야 합니다. 이것이 곧 삶입니다. 기쁜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죠. 삶은 어느 하나만 있지 않고, 이 두 가지가 순환되면서 이어집니다. 시인은 이를 깨닫게 하여 슬픔과 시련에 빠져 있는 존재에게 그것은 언젠가 사라지고 다시 기쁨이 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가지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쁨 뒤에는 다시 시련이 찾아올 것이라는 말도 함으로써, 삶이란 이 두 가지 모두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편하게 인정하자고 말하고 있죠.

 

 

3. 기쁨도 짧고 시련도 짧다

3, 4연에서는 기쁜 것(절정, 환희), 시련인 것(최악, 고난) 모두 짧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힘든 일이 닥치면 우리는 그 일이 언제 끝날까 조마조마 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업무 실수를 저질러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조마조마 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서 뒤돌아 보면 그 일은 종결되어 있고 나는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기쁨과 시련 모두 시간이 지나서 보면 아주 짧은 하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순간의 기쁨과 시련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말고, '진실된 자신, 인간의 위엄'을 생각하며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죠. 이 진실된 자신과 인간의 위엄은 나라는 인간 자체로서 가지는 궁극적인 가치를 의미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것을 중요시하면서 지금 눈앞에 닥쳐 있는 고난과 장애물을 작은 것이라 생각하고 버텨서 넘어가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동그란 길은 곧 순환을 의미

이 시의 제목은 '동그란 길로 가다'입니다. 동그랗다는 것은 순환을 의미합니다. 시인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인 '기쁨과 시련은 번갈아가며 짧게 짧게 찾아온다'를 잘 담고 있는 형태죠. 동양에서도 원은 곧 윤회와 순환을 의미하는 바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시인은 동그란 길을 간다라는 제목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공존하는 기쁨과 시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길을 계속 걸으며 번갈아가며 기쁨과 시련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련에 지나치게 절망할 필요도 없고, 하나의 기쁨에 지나치게 매달릴 필요도 없죠.

 

♣ 개인적인 의견

며칠 전, 회사에서 일을 하며 제 잘못은 아니었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고생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회사에 있는 내내, 이 일이 잘 해결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요. 며칠이 지난 지금, 그 일은 좋지는 않게 끝났지만 저는 그 일을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넘어가지 못할 장애물 같았는데, 지금은 보이지도 않는 돌부리 정도가 되어 버렸죠.

 

돌이켜보면 당시의 기쁨과 시련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아 제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던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기쁨은 기쁨대로 누리되, 지나치게 안주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시련은 시련대로 받아들이되, 넘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좌절하고 주저앉아야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가 그러한 마음을 일깨워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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