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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정호승, <반달> (시 수집 84)

by 알쓸수집가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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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정호승

 

아무도 반달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반달이 보름달이 될 수 있겠는가

보름달이 반달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은 그 얼마나 오만할 것인가

 


 

1. 우리 모두는 반달이기에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이 시는 총 4행으로 이루어진 아주 짧은 시입니다. 시의 소재는 '반달'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달은 뭐니뭐니 해도 '보름달'입니다. 빵빵하게 차 있는 보름달을 보면 내 마음도 가득 차 있는 듯하죠. 또 보름달이 뜰 때는 밤이 가장 밝을 때이기도 하죠. 그만큼 밤도 포근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소외된 것, 관심받지 못하는 것에 주목해 온 시인에게 보름달보다 더 환하게 빛났던 것은 바로 '반달'이었습니다. 보름달이 되기 위해서는 반달이 되어야 합니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속성이죠. 초승달(그믐달)이 되었다가 반달이 되고, 보름달이 되고, 다시 반달이 되고, 이 과정을 순환하는 것이 자연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달의 속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집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습니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떠한 부족하고 불안정한 면이 있기 마련이죠. 이런 속성은 반이 비어있는 '반달'의 속성과 일치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반달을 사랑해야 보름달이 될 수 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부족한 면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상대를 사랑하면서 우리는 부족하고 불안정한 부분을 개의치 않도록 해주며, 종종 채워주기까지 합니다. 시인은 앞의 2행을 통하여 '불안정한 부분이 있는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는 사랑의 힘과, 사랑을 통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따뜻함으로 채워주는 것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2. 보름달이 반달이 되는 것, 사랑을 나눠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

3~4행은 1~2행과 반대입니다. 보름달이 반달이 되는 것을 말하고 있죠. 이는 반대로 내가 받은 사랑을 똑같이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내가 받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받는 만큼, 오히려 더 많이 되돌려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이죠. 이는 연인 간의 사랑만이 아닙니다. 위로, 애정, 도움 등 모든 따뜻한 것을 '사랑'이라고 시에서는 말하고 있는 것이죠.

 

내가 받아서 나만 보름달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오만한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보름달이 다시 반달이 되어야 한다는, 즉 우리가 사랑을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또 돌려주면서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죠. 이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은 반달이 되어도 다시 보름달이 곧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며, 반달이 된 누군가를 위하여 내가 더 홀쭉한 달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 개인적인 의견

정호승 시인의 시에서는 외롭고 쓸쓸한 존재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이 드러납니다. 그에게 있어서 사랑은 '단순한 애정'뿐만이 아닙니다. 기꺼이 손을 주는 것, 나의 무엇인가를 내주는 것, 어깨를 두드리는 것 등 모든 따뜻한 손길이 사랑입니다. 자신이 그믐달이 되어도 남을 보름달로 만들어주기 위한 것, 남을 보름달로 만들어주면서 자기자신도 다시 보름달이 되는 것, 그런 따뜻함을 정호승 시인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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