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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모아 시

이병률, <살림> (시 수집 85)

by 알쓸수집가 202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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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이병률

 

오늘도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일일이 새벽을 둘러보고 오느라구요

 

하늘 맨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압정처럼 박아 놓은 별의 뾰족한 뒤통수만 보인다고

내가 전에 말했던가요

 

오늘도 새벽에게 나를 업어다 달라고 하여

첫 별의 불꽃에서부터 끝 별의 생각까지 그어 놓은

큰 별의 가슴팍으로부터 작은 별의 멍까지 이어 옪은

헐렁해진 실들을 하나하나 매 주었습니다

 

오늘은 별을 두 개 묻었고

별을 두 개 캐냈다고 적어 두려 합니다

 

참 돌아오던 길에는

많이 자란 달의 손톱을 조금 바짝 깎아 주었습니다

 


 

 

1. 이병률 시인에 대해

이병률 시인은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한 뒤, 1995년 <<한국일보>>에 <좋은 사람들>과 <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했죠. 

 

이병률 시인의 시에서는 섬세한 언어적 감각미가 돋보입니다. 그의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2003)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시를 읽어보면 참으로 섬세한 언어적 표현이 돋보인다는 생각이 들죠. 특히 이병률 시인이 그려낸 풍경은 특정 사물이나 자연뿐 아니라 사랑이나 죽음과 같은 인간의 삶의 단면까지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단순히 단면을 그리고 끝이 아니라, 그 안에 시인만의 깊은 통찰과 깨달음을 넣어 시의 분위기를 복합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감상할 <살림>이라는 시는 <<바다는 잘 있습니다>>라는, 2017년에 나온 시집에 수록된 시입니다. 여기서의 '살림'의 대상은 인간이 아닙니다. 바로 ''입니다.

 

 

2. 별을 살림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특별하고 섬세한 자세

이 시는 총 5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는 '별'을 소재로 하여, 별들에 대한 시인만의 새로운 관점을 섬세하게 어루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섬세함은 별을 대하는 시인의 자세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시에서의 별은 '보살핌의 대상, 즉 살림살이해 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죠.

 

우리가 흔히 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동경, 신성, 희망'과 같은 이미지들입니다. 하지만 이병률 시인은 전혀 다른 관점, '별들도 보살핌의 대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별을 보살핌의 대상으로 보는 시인의 언어는, 읽다 보면 별에 사람이 투영되어 '별과 같이 하나하나가 빛나는, 우리 인간을 서로 보살펴주어야 한다'라는 내용으로까지 확장되게 해 주죠.

 

 

1연에서 화자는 별을 둘러보고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여기서의 별을 본다는 것은 '보살핀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화자는 2연에서 하늘 맨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본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통 별을 보는 것은 '올려본다'라는 말을 쓰는데, 아래로 내려본다는 표현을 통하여 별은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또한 이 별은 마치 집 하나하나에서 새어 나오는 작은 빛과 같이 그려지기도 하죠. 별을 통해 인간 세계를 노래하고 있기도 한 셈이죠.

 

그 다음에는 시를 관통하는 중요한 표현, 별을 압정처럼 박아 놓은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뾰족한 뒤통수만 보인다고 하죠. 이 표현은 그만큼 별이 가녀리기도 한 존재라는 걸 부각시키는 표현입니다. 누가 별의 뒤통수가 뾰족하다고 생각할까요. 그렇게 찬란하고 웅장한 별들도 뒤에서 보면 가려린 모습도 다 가지고 있는 셈이죠.

 

 

 

3. 헐렁해진 실을 매며 별을 돌보다

이러한 별을 돌보기 위해 시인은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습니다. 뒤이어 첫 별의 불꽃부터 끝 별의 생각, 큰 별의 가슴팍으로 작은 별의 멍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모든 별의 모든 모습들을 의미합니다. 이 별들을 이어놓은 헐렁한 실을 화자는 하나하나 매 줍니다. 실은 별들을 묶어두는, 즉 관계를 맺게 하는 존재이지만 헐렁해져 있어서 수선이 필요합니다. 화자가 이를 하나하나 매줌으로써, 별을 돌봐 주는 살림살이 활동을 하는 셈이죠.

 

4연에서는 오늘의 특별한 일을 적어 둡니다. 별을 두 개 묻은 것은 별의 소멸을 의미하는데 시인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의 생각을 버린 셈입니다. 반대로 별을 두 개 캐낸 것은 별의 생성을 의미하며 시인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의 생각이 추가된 셈이죠. 이를 마치 가계부 작성하듯이 적어 두는 것, 살림살이 정리하듯이 정리해 두는 것입니다.

 

 

5. 달의 손톱을 잘라서 별을 더 돋보이도록

마지막 5연에서 화자는 돌아가는 길에 달의 손톱을 잘라줍니다. 달이 밝을수록 주변의 별은 주목받지 못하고, 때로는 자신의 빛조차 달에 의해 가려집니다. 이러한 달의 손톱을 자름으로써, 별의 일상에 도움을 주려고 하고 있죠. 여기서도 역시 이러한 행위는 '별을 보살펴 주는 살림살이'입니다.

 

이렇게 시인은 별들을 대하는 다양한 자세를 통하여 살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별들을 내려다봄으로써, 친근한 존재로 바꾸면서도 별 하나하나를 존중하며 대하죠. 때로는 살림살이를 비우고, 때로는 새로운 살림살이를 채우고, 각각의 별들이 연결될 수 있도록 뒤에서 물씬 도와줍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존재를 서로 도와주고 이어주는 살림을 하며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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