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새벽에>, 박재삼
이십오 평 게딱지 집 안에서
삼십 몇 도의 한더위를
이것들은 어떻게 지냈는가
내 새끼야, 내 새끼야
지금은 새벽 여섯 시
곤하게 떨어져
그 수다와 웃음을 어디 감추고
너희는 내게 자유로운
몇 그루 나무다
몇 덩이 바위다
1. 박재삼 시인에 대해
박재삼 시인은 1933년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이후 한국으로 넘어와, 경남의 삼천포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죠. 어릴 적 지내오던 공간은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삼천포의 바닷가 풍경 역시 박재삼 시인의 삶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죠. 평온한 바닷가 터전, 하지만 가난했던 시골 생활은 그의 시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서정시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노랫자락 같은 감성을 재현하면서, 소박한 일상과 자연을 소재로 한 섬세한 시를 창작했습니다. 특히 사투리 등을 통해 향토적인 정서를 시에 풍부하게 담아냈죠.
한편으로는 '한, 슬픔'과 같은 감정을 서정적인 가락으로 노래했죠. 특히 그의 초기 시에서는 '괴로워하는 아이와 그러한 가족의 모습'이 많이 등장합니다. 박재삼 시인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시기는 일제강점기 막바지, 당시 박재삼 시인의 가족, 나아가 우리 민족이 겪은 많은 한과 슬픔을 직접 보며 자랐던 시인이었기에 이러한 '한과 슬픔'은 특유의 서정적인 성향과 결합하여 시로 탄생했습니다.
1953년, 시 <강물에서>와 1955년, 시 <정적>이 추천되면서 시 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1962년에 첫 시집 <<춘향이 마음>>을 낸 이후로 꾸준히 시 활동을 하였습니다. 한국 문학사에서 서정시인으로서 당당하게 그 계보를 잇고 있는 박재삼 시인의 시, <한여름 새벽에>를 감상해 보죠.
2. 가난한 집의 아이들
시는 여름날의 새벽을 시간적 배경으로, 집 안을 공간적 배경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 집 안에서는 아이들이 자고 있고 화자는 이를 바라보고 있죠.
이십오 평의 집. 당대를 기준으로 하면 꽤나 넓은 방일 수도 있지만, 화자가 표현한 '게딱지 집'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는 이 집이 마냥 쾌적하거나 넓은 집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딱지처럼 우리를 보호해주기는 하지만, 좁고 어두컴컴하고 부유물로 가득한 것이 게딱지라는 걸 생각하면, 집이 마냥 좋은 집은 아닐 것 같죠.
이 집에서 화자의 아이들이 곤히 잠을 자고 있습니다. 삼십 몇 도의 더위 속에서 아이들은 부모를 기다리는 마음 하나로 버텨왔을 것입니다. 더위보다도 부모가 왔을 때의 반가움이 큰 아이들은 수다와 웃음으로 저녁을 보내고, 열대야를 뒤로 한채 곤하게 잠들고 있습니다.
3.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
부모라면 누구나 내 아이가 더 깨끗하고 쾌적한 곳에서 더 즐겁게 지내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아이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괜히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많죠. 시에서의 화자 역시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곤히 자는 아이들을 보며 이렇게 더운 날에 시원하게 해 주지도 못하는 것, 즉 가난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한편 부모를 기다리며 웃음과 수다거리를 준비했던 아이들을 보며 '이 아이들이 내 삶의 원동력이다'라는 마음도 느꼈겠지요.
이러한 소중한 아이들의 존재를 화자는 마지막 세 행에서 '자유로운 / 몇 그루 나무 / 몇 덩이 바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자유롭다'라는 것입니다. 화자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존재라는 셈이죠. 나무는 푸른빛으로 가득합니다. 바위는 단단하여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 같죠. 화자는 이 나무와 바위를 통해서 '아이들은 내 푸른 생명의 원동력이며, 나의 마음을 지켜주는 바위와 같은 존재'라는 걸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
이 시에서 등장하는 가난한 집의 아이. 이것은 시인의 어린 시절이 형상화된 모습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당시에는 선풍기 같은 기기도 없었으니 더위에 무작정 버틸 뿐이었겠죠. 부모님은 고달픈 몸을 이끌고 아침부터 밤까지 나가 여러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생계를 연명했겠죠. 참으로 어려운 삶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어린 시인은 밤이 되면 도란도란 모여 같이 잠을 자고, 잠자리에 들어서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는 걸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의 마지막이 참으로 행복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녁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의 가족끼리의 만남을 위해 밖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빠르게 퇴근하려고 하잖아요. 특히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은 더더욱 그러겠지요. 이 짧은 시를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과 소박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느끼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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